개연성이란 게 태어난 적 없는 영화 <백두산>

핵으로 마그마를 터트리듯 유머로 스릴을 터트린

by 공존

영화 도입부, 미증유의 지진이 강남대로에 들이닥친다. 주인공은 신묘한 운전실력을 발휘해 지반이 무너지고 대형 공사자재가 굴러다니는 아수라장을 뚫고 살아남는다. 그런데, 꽤 긴 액션 시퀀스에서 스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재난보다도 “역주행” 장면에서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더니, 스펙타클은 지나치고 그 속에서 살아남는 주인공은 너무 편안해 보이기 때문이다. 가벼운 접촉사고와 동시에 지진이 멈추고,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차에서 내린 주인공이 다시 대로로 나오는 것은 또 무엇인가. 방금 전에 대로에서 골목으로 들어갔던 이유가 사라져버리지 않는가.


극동항구를 잃게 될 러시아, 만주일대를 잃게 될 중국, 한반도멸망으로 발생할 막대한 손실을 통제해야할 미국, 난민 등 한반도 복구와 지원으로 특수를 누릴 일본 등 극동의 관계국들을 모두 쌩까고 북한에 특수부대를 투입하는 것은 무엇이고, 전투부대가 아니라 폭발물해체반이 북한을 종으로 돌파하는 것은 무엇인가. 북한의 군대는 모두 어디를 가버린 것인가.


<백두산>은 근본적으로 설정 오류가 너무 많고 개연성이라는 게 단 한번도 존재한 적 없기 때문에 그 스펙타클과 스릴에 몰입을 할래야 할 수가 없는 영화다. 상황이 납득이 되고 받아들여져야 캐릭터의 위기와 감정에 공감을 할 텐데. 차량 내에서 총기 사고를 내도 인상 한번 찌푸리고 마는 작전팀장은 교전수칙이나 전작계도 숙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핵 탈취 작전에 돌입한다.


그런 주제에 얼마나 뻔하고 흔한 스토리인지 이준평의 여러번의 표변은 오로지 스토리를 진행하기 위해 쓰일 뿐이고 그마저 모두 여러 영화에서 지겹도록 보아온 것들이다. 모든 사람들이 영화가 끝나는 마지막 장면까지 철저하게 예측할 수 있을만큼 정확히 흥행공식대로만 이야기가 흘러간다. 어 이건 예상 밖인데? 하는 몇가지 장면은 개연성을 철저히 외면한 결과일뿐.


그렇다고 영화가 장점이 없는 건 아니냐 하면 그건 아닌데,


웃기다. 남녀노소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다. 개연성을 채울 분량에 웃음을 채워넣었고, 각본팀이 시나리오를 조질 시간에 대사빨을 조져낸 영화다. 연말 연시, 가족단위 관객을 흡수하기 위하여 최대한 타겟 연령대를 넓게 잡고 쉽게 쉽게 편하게 연출을 했다. 개연성을 포기하고 그냥 즐기기로만 마음 먹으면 이병헌의 전라도 대사나, 30주 하고도 3일만에 아이를 낳는 수지의 임신주기에도 무감해질 수 있다. 비슷하게 남북관계를 베이스로 하여 개연성을 따져가며 짜임새 있게 연출한 <강철비>가 중박에 그친 것을 감안하면, 철저히 볼거리에 집중한 <백두산>의 선택은 이해할만 하고, 존중할만 하다.


한국영화가 요 몇년 사이에 창의성을 잃고 평면적인 연출과 시나리오에 머무는 경향이 있다고 말들이 나오는데 작년 한국 영화 대작들의 연속 폭망 사태를 겪고 났으니 <백두산>처럼 안전하지만 대박은 치고 싶어! 라는 의지로 모든 배우, 유머, 신파, 클리셰, 재난, 액션까지 흥행요소는 모두 끼얹은 영화가 나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개연성만 포기하면 시원시원하게 시간은 잘 흘러가니까. 극장에 사람은 가득했고, 사람들은 두시간 내내 여러번 웃음을 터트리며 영화를 즐겼다. 그래픽은 쓸만했고 스케일도 어마어마하다. 크리스마스와 신년 휴일에 가족 다함께 보기엔 딱 좋은 영화다. 게다가, 영화를 보고 나서 뒷담화를 하는 재미도 있고 말이다.


60점? 돈 아까워서 보지 말라고는 못하겠고 아무 생각없이 그냥 보고 오라고 해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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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도저히 분이 안풀려서, 영화 각본을 내가 다시 써본다면...


- 백두산 분화와 대지진 발생

- 즉각 한미러중일이 모여서 사태를 확인하고 수습책을 논의

- 그러나 같이 수습해야할 북한 정권은 망해버렸고 그 틈을 노려 북한의 군벌이 핵을 탈취, 백두산 분화를 방패 삼아 쿠데타를 벌인다. 보스는 마동석

- 2~4차 폭발을 경고하지만 마동석의 쿠데타군은 당연히 불신하여 파병을 거부하고, 강제로 돌입하려다가 교전 발생. 핵폭발을 우려한 연합군은 물러난다.

- 이 과정에서 마동석이 직접 연합사령부 회담장에 나와서 미국 쪽 인물들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만 있다가 피식 웃으면서 영어로 맞받는 장면 하나 넣어주고,

- 사태가 심각해지자 연합군은 특수부대 파병을 결정하나, 각국 의회는 병사들의 생환 가능성이 극히 낮다며 파병을 반대한다. 결국 작전은 가장 절박한 한국과 미국의 특수부대 소수 병력만을 투입키로 한다.

- 그러나 백두산 분화로 인하여 미군부대와 떨어져, 하정우의 폭발물 해체반만이 단독으로 작전을 수행해야 할 상황이 왔고, 정보원 이병헌을 구출, 이후 작전 과정에서 2,3차 지진으로 몇번 위기를 넘긴다

- 악전 고투 속에 백두산 인근까지 침투, 육로로 진입한 중국군이 쿠데타군을 교란하는 사이 몰래 북핵을 탈취하는데 성공하지만 이 과정에서 부대원은 전멸하고 하정우와 이병헌만 살아남는다

- 탄광까지 하정우와 이병헌을 추격한 마동석, 그 때 이병헌이 하정우를 총으로 쏘고

- 사실은 이병헌도 쿠데타 찬성파였던 거임

- 하정우를 살려놓은 이유도 쿠데타군엔 핵탄두 신관을 해체할 전문가가 없었기 때문에 연합군 작전을 역이용해 유인했던 것일뿐, 하정우는 신관을 해체해 마동석에게 셔틀을 한 것이었다!

- 필사의 설득+최후의 지진이 시작되면서, 갱도가 무너지며 쿠데타군 전멸.

- 아직도 4차분화를 못믿겠냐며 하정우는 이병헌의 마음을 돌리고

- 마동석과 하정우+이병헌의 최후의 결투

- 마동석을 쓰러트리고 작전을 성공, 그 뒤에 살릴지 말지는 감독이 알아서. 지반이 무너지면서 갱도가 외부로 노출, 살아남는 방법도 있다.


...라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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