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 겸임교수가 되었어요!

그냥 열심히 밭 갈다보니 뭔가 뭔가가

by 공존

마흔을 넘으면 알게 되는 것이 한가지 있다. 내가 얻게 된 기회가 다른 누군가에겐 굉장히 큰 무언가라는 사실. 나는 이 사실을 젊었을 때는 알지 못했다. 가정 환경으로 그리고 어떤 우연한 기회로 타인보다 쉽사리 성취의 사다리를 올랐고 그 과정에서 얻어진 과실들은 본디 나의 것이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했거나, 말 그대로 우연히 얻어진 것들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평가절하했다.


조금 나이를 먹고 각자가 각자의 사정에 따라 다른 걸음걸이를 갖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는, 또 진짜 건강을 바쳐가며 석사 학위 하나 따고 나서는 나 자신의 성취에 대해서도 보다 정직하게 인정을 하게 되었다. 우연한 성취란 있을 수 있을까? 내가 쉽사리 무언가를 쌓아올린 과정에서, 나는 다른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놓친 것은 없었을까?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있어서 우연히, 운 좋게 얻어진 것일까?


- 시작은, 이러했다. 나는 2020년에 처음 코로나가 발발했을 때, 교실에서 이런 저런 노력을, 제법 부단히 해나갔다. 아이들과 오픈채팅방을 만들고, 줌 수업에서 학습효율을 높이기 위한 각종 조치를 해나갔다. 그러던 참에, 교장선생님께서 우리 학교의 사례를 책으로 내보자며, 나에게 그 책임저자 역할을 맡겼다. 나는 10여명의 선생님들을 끌어모아 원고를 모으고, 편집자와 소통하고, 검수를 하는 과정을 거쳐 한권의 책을 펴냈다. 그런 과정은 브런치 글로도 일부 남겼다.


2021년에는 대학원 수업을 시작했다. 아이가 태어났고, 나는 퇴근 후 다섯시간 이상 육아와 가사노동을 한 뒤에야, 즉 밤 11시쯤에야 컴퓨터에 앉아 과제를 하거나 책을 읽었다. 그런 시간이 두 해. 그 사이에 말 할 수 없이 복잡하게 흘러갔고,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갖고 나는 석사 학위를 얻었다.


그리고 석사학위 졸업장이 나오기도 전, ChatGPT라는 또 하나의 혁신이 발생했다. 1월부터 이어진 열풍에 교육당국은 빠르게 반응해 수백억 단위의 예산과 교육정책들이 각 교육청마다 편성되었다. 나는 겨울방학, 제주도에 있으면서 그 정책 공문들을 탐색해, 두개의 사업을 신청해, 빠르게 인공지능 활용 영어교육 계획을 수립했다. 인공지능에 맞춘 평가계획을 작성하고, ChatGPT를 활용해 수행평가와 지필평가를 시행했다. 1학기에 이어 2학기에는 그것을 훨씬 심화한 계획을 세웠다.


그런 한학기를 분주히 보낼 즈음, 브런치와 우리 줌 수업 책을 보시고, 나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계신 인연이 나타나셨다. 경희대 수원 캠퍼스의 교사 전공에서 강의 교수를 초빙하려하는데, 교육기술 활용 수업 관련 강의를 한 학기 동안 지도해주실 수 있는지 물어봐주신, 판교 모 학교의 교감선생님. 이번에 타 학교의 교장선생님으로 옮겨가신다 한다.


나는 그 쪽지를 받고 약간의 흥분 상태에서 아내에게 의견을 물었다. 아내는 당장 하라고 했다. 다음엔 지도교수님 차례였다. 석사 학위 논문을 20쪽의 분량으로 학회지에 내기로 했는데, 한 학기 째 미루고 있어 죄송스럽던 시점이었다. 교수님은 처음엔 반대하셨고, 그래서 하룻밤을 보낸 뒤 다시 청을 드려 허락을 받았다. 교수님의 관점에선 소중한 제자가, 박사 과정을 성실히 마치는데 우선순위를 두길 기대하실 텐데 이런 적당한 과실에 눈독을 들이니 아쉬우셨을 것이다.


하여, 나의 대학 강의 계획은 거의 확정되었다. 남은 일은 지원 서류를 작성하고 강의계획서를 짜는 일이었다. 신청서 작성에 한두시간, 그리고 강의 계획서 작성까지 또 한두시간. 그리고 나는 합격 메일을 치앙마이 여행 사이 받게 되었다.


일은 그리 되었다. 나는, 충분히 열심히 살았다. 다른 이들이 쉽게 도전하지 않을 일들을 적지 않게 해왔고, 그 성과로 소중한 성장의 기회를 더 얻게 되었다. 겸임교수, 다시 말해 교사로 재직하며 한정된 시간의 강의만을 제공하는 일에 대하여 그 한계는 뚜렷하나, 누구에게라도 그 가치 또한 또릿하다. 남은 일은 하루 속히 지도교수님과의 논문 작업을 마치고, 박사 학위에 도전하며, 또 계속, 공부를 해나가는 일이다.


다행히도 아이가 요즘은 퍽 일찍 자준다. 다행히도 아내도 나의 늘어나는 공백을 감내해준다. 나는 수업으로 집을 비우는 날만큼, 집에 있는 날 아내를 더 쉬도록 해주기로 했다. 부디 이 선택이 우리 모두의 더 나은 삶의 밑거름이 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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