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 싫어용 양말도 싫어
"어쩜 저렇게 사진을 찍을 때 협조를 안해줄까."
"흐음...파파라치 샷이 답이라니까."
어릴 때의 나는 열이 많은 탓인 모자를 싫어했다고 한다. 다른 건 유순하게 말을 잘 듣는 편이었는데도, 모자만 씌워놓으면 탁탁 벗어던졌다. 그런 버릇 탓인지, 스무살이 넘어서도 모자 쓰는 것을 싫어했다. 군대에 가서 사시사철 모자를 써야되니까 조금 그걸 쓰는 일에 익숙해졌다.
우리 따님은 한 6개월 무렵까진 모자를 잘 쓰셨던 것 같다. 그런데 6개월쯤이 지나자, 양말이며 모자며, 씌워놓으면 벗어던지기 시작하셨다. 정말 미스테리할 정도로 자기 몸에 뭐 달라붙어있는 걸 싫어했다. 우리가 이런 사정을 하소연하면, 사람들은 와서 "애기 때부터 버릇을 들였어야지."라고 하지만, 멀쩡히 양말도, 모자도 잘 신겨놓고 씌워놨는데도, 어느날부터 마구 얘가 벗어던졌다니까요?
그래서 아기 때, 양말이 몇 짝이나 없어졌다. 4월쯤이었던가, 딱 6개월 때다. 벚꽃구경을 조금 뒤늦게 갔는데 아기띠를 해서 아이가 앞을 보도록 해서 안고 다녔다. 겨우 산책을 마치고 차에 왔는데,
"어? 오빠. 양말 어디갔어?"
"응?"
하고 아내가 말해서 보니, 한쪽 양말이 벗겨져있다. 그리고 발목 주위를 또 제 손으로 뜯어놓았다. 철저하게 습도관리를 하던 아기 때부터 자기 손을 어찌 놀릴 줄을 몰라 제 오른 발목을 할퀴는 버릇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기가 막히게 오른발 양말을 벗어던지고 거길 긁은 모양이다.
하 정말, 아이가 양말을 벗어던진 것이 어딘지 알기 어렵다. 뒤는 조금 가파른 산길이고, 다시 저길 올라가기엔 길이 험하다. 아이 양말은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기에 우리는 양말을 포기하고 그냥 차를 몰아 나왔다. 그 뒤로도 수시로, 아이는 양말을 벗어던진다. 지금도 어린이집을 등원하면서, 여름엔 아예 양말은 신길 수도 없다. 조금 추워졌으니 이제는 양말을 신기지 아니할 수가 없는데,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양말 신기기다. 두돌을 지나 이제 세살이 된 아이가, 어찌 이리 양말 하나 제 몸에 붙어있는 걸 싫어할까.
모자와 머리묶는 일도 유구무언이다. 16개월쯤까진, 머리를 묶어도 그럭저럭 애가 좀 참아주었다. 그런데 그 뒤로는 절대로 머리를 묶도록 그냥 두지 않는다. 어떻게, 아프게 묶어주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어느날 갑자기 머리를 묶을라치면 허리를 배배 꼬며 아빠 품을 탈출한다. 모자를 씌워주면 탁 하고 즉시 내던진다.
그 덕분에 제 엄마는 속이 터져나갈 노릇이다. 집에선 놀이 삼아 좀 쓰는 것 같더니만은 외출을 할 때? 어림없이 이얍!하고 현관문 앞에서 탁 모자를 집어던지고 달려나간다. 그 덕분에 애 사진 찍어주길 좋아하는 엄마 손에 이끌려 간 스튜디오마다 아이의 머리모양은 늘 한가지 모양새로 생머리 소녀다. 머리를 묶거나, 컨셉에 맞추어 이런 저런 사진을 찍어주려한들, 요령부득. 저언혀. 네버.
모자든 뭐든 걸치고 있는 걸 싫어하는 걸 보면 나를 닮아그런가 싶으면서도, 어차피 자기가 편한대로 행동하는 것일 텐데 그걸 구태여 부모가 이래라 저래라, 아이를 귀찮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다. 막상, 콩순이 키즈카페에 데려다 주니 평소엔 절대로 쓰지 않던 모자같은 간호사 머리장식을 한시간 넘게 쓰고 있어 놀랬다. 자기가 좋으면 역시나 뭐든 하는 법인데, 싫고 원하지 않을 때 씌우려하니 이 모양.
그러나, 하루하루 이쁘기만 한 모습을 더 카메라에 담고 싶은 마음을, 아이가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 야속한 마음도 어쩔 수가 없다. 기차역 카페에 가서 아담히 좋은 공간이 있어서 철도원 모자 좀 씌워놨더니,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을리가 있나 모자는 자꾸만 벗기만 하고, 아 여기까지 와서 이 풍경이 아까우니 또 제 엄마는 모자를 다시 씌우고, 그러다가, 아이는 팩 하고 모자를 베개삼아 엎드려 버린다. 자기 나름의 기싸움에서 승부수를 둔 것이라고 봐야할까.
아내는 기가 차서 포기하며 등을 돌렸다. 나는 위풍당당한 승전보의 순간에 웃으며 사진을 남겼다. 절대로 엄마에게 지지않는 이 고사리손의 패기 넘치는 모습이여. 네 응가 칼라파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