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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매료 Apr 04. 2023

커피를 엎었다.

카페 사장인데 커피를 몰랐다.



"야, 우리 카페 때려칠까?"




성수기를 앞둔 초여름의 불 꺼진 매장에서 우리는 한숨만 쉬고 있었다.

바 테이블에는 원두가루가 사방에 흩어져 있고 수십 잔의 에스프레소를 뽑아낸 커피 퍽 찌꺼기가 머신 위에 가득했다.


우린 어쩌다 이러고 있었을까.


자그마한 카페를 운영하던 우리는 사실 커피를 잘 알지 못했다.

커피 프랜차이즈 본사 직원으로 몇 해 일해 본 경험이 있어서 몇 가지 커피 음료는 만들 줄 아는 정도였다. 그렇지만 카페를 꼭 해보고 싶었다. 커피에 자신이 있었거나 장사에 도가 텄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더 이상 치열하게, 너무 열심히, 그리고 남을 위해 살고 싶지 않았다.


비 오는 날 습한 버스 정거장에 줄 서 있는 느낌 말고, 매장 유리문 너머로 내리는 비가 주는 느낌을 원했다.

상사 눈치에 자판기 두드리는 소리 말고, 빗방울이 화단의 꽃 잎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늦은 밤 퇴근길 얼큰해진 술기운 대신 매장 가득 젊은 사람들의 행복한 기운을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긋지긋한 남의 회사 명함 대신 내 카페 대표 명함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회사를 뛰쳐나왔다. 그리고 동업을 시작했다.

문 닫기 일보직전인 카페를 인수해서 전사장님께 일주일 정도 핸드드립 추출 방법에 대한 속성 교육을 받았다. 오픈 빨로 매출이 조금 오르고 있던 여름날, 예상치 못한 문제에 맞닥뜨렸다.




"커피 맛이 안 잡혀요..."




저녁 내내 부재중 전화가 와 있어서 전화를 걸었더니 동업하던 친구의 풀 죽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매장으로 달려갔더니 며칠째 커피 맛이 들쭉날쭉해서 이리저리 레시피를 조정해 가면서 에스프레소를 뽑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커피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며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우리는 커피 초보들이었다.

우리를 보고 손님들이 올 것 같진 않아서

국가대표 바리스타의 원두를 가져다 내려주면 그분을 보고서 우리 카페를 찾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원두를 받아서 쓰고 있었다.

분명 본점의 커피 맛은 훌륭했고 그 맛을 우리 매장에 가져오면 장사가 잘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운영을 해 보니 날이 갈수록 들쭉날쭉해지는 커피 맛에 우리가 먼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급하게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커피 내리는 방법, 에스프레소 추출방법, 그라인더 세팅 방법 등을 찾아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한 나는 집 근처 카페 사장님들을 찾아가서 방법을 여쭙기도 했다.


로스터리 카페에서 진행하는 원데이 클래스도 참석해보고 무료 재능기부를 하시는 분들께 도움도 받아봤다. 2-3주간 헤매고 다닌 끝에 그분들이 '이 정도면 됐다.' 고 하실 정도로 맛을 뽑아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우리 매장에만 오면 제대로 의도한 맛이 나오지 않았다.


원인을 몰랐다.


다시 시작된 방황.

급한 마음에 원두를 봉투채 들고 여러 커피 학원과 로스터리를 찾아다니며 이유를 물어봤다. 하지만 찾아간 곳들 중 대부분은 맛 잡기 쉬운 자기네 커피를 쓰라고 할 뿐 이유를 알려주지 않아서 여러 곳을 전전했다.  

그러던 중 젊은 분들이 운영하는 로스터리에서 우리 커피의 문제점을 짚어줬다.




"디게싱이 덜 됐네요.
가스가 덜 빠져서 어제, 오늘, 내일 맛이 다 다를 거예요."




우리 정말 그 정도로 커피를 몰랐다.

그러면서 카페를 하겠다고 까불고 있었다.

매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문제가 해결되어서 시원하기도 했지만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답답함이 조금씩 더 커지고 있었다. 수많은 커피의 변수와 더불어 장비, 실력, 입지, 장사를 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모든 것이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었다.

무엇보다 커피 맛을 이끌어 내는 원천기술이 우리한테 없다는 점을 깨달았을 때 거의 절망에 가까운 기분이 들었다.


그날 우리는 그동안 신봉하던 커피를 엎었다.



"커피 배우러 가자."



매장을 빠르게 정리했다.

그렇게 커피 여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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