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보기에 느린거지,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어요
나는 느리다.
그래도 6년째 계속 달리고 있다.
인스타를 보면, 서브3, 서브4 주자들이 넘친다.
마라톤 대회를 나가면, 내 뒤엔 많지 않은 주자들이 있고, 앰블런스와 경찰기동대들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래도, 달린다.
나는 신체적인 운동능력이 뛰어나지도 않고, 운동을 좋아하지도 않고, 몸이 가볍지도 않다.
즉, 달리기를 못할 만한 요소를 다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이다.
내 평생 운동이라는 것을 자의적으로 해본 적이 없다.
일단 잘 하질 못하기 때문에 재미있기가 어렵다.
나는 중/고등학교 때 피구를 하게 되면 늘 울곤 했다.
공을 한 손에 쥐고 어깨 위로 공을 치켜 올려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 있는 힘껏 공을 내꽂는 그런 친구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공포심이 들었다.
공을 던지는 친구의 그 레이저 눈빛을 보면, 공포심이 먼저 들어, 공을 피해야겠다는 생각도 안 들고, 그냥 순간 얼어붙었다. 그러다 보니 누구보다 먼저 공을 맞아 일찍 죽곤 했다.그리고는 항상 거의 울었다.
아파서라기보다는 그 공포심때문이었던 것 같다.
학창시절 내내 피구를 하는 그 느낌이 재미있거나 다이나믹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나한테는 굉장히 두려운 시간이였고, 그래서 맞게 되면 그 핑계 삼아 울 수 있는 핑계가 되었던 것 같다.
체력장을 하면 늘 매달리기는 2초. 그만큼 복근도 요령도 없었다.
던지기 하면 10미터. 어깨 힘도 없었다. 근육을 어떻게 써서 공을 던질 줄을 몰랐다.
윗몸 일으키기는 배치기를 동원해서 겨우 점수 조금 보태고, 그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지구력으로 버텨내는 오래 달리기 정도였다. 다른 거는 다 빵점에 가까운 점수였다.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많이 봐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체력장은 늘 거의 꼴찌에 가까운 등급이었고, 체력장점수가 국영수 점수를 다 깎아 먹는 현실이였다. 남들 다 받는 1등급을, 나는 받질 못했다.
그렇게 내 인생에 운동이란 늘 부정적 경험을 주었다.
그러니 대학생이 되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운동을 해본 경험은 정말 아주 미비하다.
승부욕도 없고, 순발력도 없고, 땀 흘리는 것도 굉장히 싫어했다.
나는 운동을 여전히 싫어한다.
그런 내가 달리고 있다.
왜일까?
운동을 잘할 능력도 없고 운동을 하는 걸 좋아하지도 않는 내가??
그것도 몇년째 꾸준히 달리고 있다.
느리게 달리기 때문이지 않을까?
누군가를 이겨야 하는 운동, 승자와 패자가 명확한 운동, 순발력과 동체시력이 필요한 운동이라면, 나는 이렇게 오래 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달리기란 운동은 매우 단조로운 동작의 반복이다.
근데 1시간을 달리고 2시간을 달려도 생각보다 심심하지 않다.
달리는 내내 나는 생각한다. 오늘 내 발의 감각들- 오늘은 왼발 새끼 발가락이 좀 아프네, 오른쪽 고관절이 좀 뻐근하네 - , 그리고 내 몸의 상태, 내 심장 박동, 오늘은 땀이 많이 나네, 오늘은 바람이 시원하네 등 모든 오감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것이 달리기다.
내가 만약 다이나믹하고 스피디한 운동을 하게 된다면, 중고등학교시절 피구할 때 처럼 나는 그 자체가 스트레스와 공포로 다가올 때가 있을 텐데, 달리기는 내가 원하는 만큼 느리게 달릴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혼자 달리는 걸 좋아한다.) 그렇게 느리게 달려도 충분히 힘들다.
느리게 달린다면, 걷기랑 뭐가 다를까?
걷기 운동도 굉장히 좋지만, 나같이 머리가 복잡한 사람에게는 걷기 운동은 오히려 잡생각을 더 많이 누적이 되게 한다.
몸이 그닥 힘들지 않기 때문에 걷는 동안에 이런 저런 생각,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이 조각조각 다가오게 된다. 그래서 걷기를 하고 났을 때에 개운하다는 느낌보다는 뭔가 머릿속에 할 일이 더 가득 쌓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곤 했다.
그리고, 늘 시간에 쫒기며 살아가는 워킹맘들에겐, 걷기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운동이다. (만보를 걸으려면, 1시간 30분정도 7키로미터를 걸어야 한다.!!)
그렇다고, 내 몸을 극한의 힘든 상태로 보낼 정도로 힘들게 달릴 필요는 없다. 옆사람과 이야기를 헉헉대며 할 수 있을 그 정도, 내 머릿속의 생각보다는 내 몸에서 오는 직관적인 신호를 본능적으로 먼저 느낄 수 있을 만큼의 그런 속도로 달리기만 해도 충분히 내 몸은 삐걱대기 시작한다.
그 정도가 요즘 유행하는 "Zone 2 운동"이다.
어제는 오른쪽 다리가 아팠는데 오늘은 괜찮네, 오늘은 허리가 조금 아프네, 오늘은 어깨가 가볍네, 오늘은 발바닥이 평평하게 느껴지네. 이 운동화는 지난번에는 불편했는데 이제는 길들여진 건가? 등등 달리는 순간 내 몸에서 오는 신호에 집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어느정도 달리고 나면 달리기 전에 내 머릿속을 꽉 지배하고 있었던 가족내, 직장내 고민이라든가 개인적인 고민이 훨씬 희미해져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나는 매번 달리러 나갈 때마다 너무나 달리기 싫지만,
달리고 나서는 싫었던 적이, 후회했던 적이 없었기에, 또 궁시렁대면서 달리러 나간다.
느리게 달리면, 오래 달릴 수 있다.
느리게 달려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