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키우랴 일하랴, 그래도 아무튼 달린다.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친한 언니가 여러 번 함께 뛰자고 권유했기 때문이다. 그 언니는 이미 친구들과 함께 꾸준히 달리고 있었고, 저녁 산책 중 가볍게 뛰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저게 나랑 무슨 상관일까’ 싶었다. 운동과는 담을 쌓고 지내던 내게 달리기는 멀고 낯선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중/고등학교 체육 시간 외엔 단 한 번도 진지하게 달려본 적이 없었다. 그마저도 여학생들이 자유롭게 뛰거나 땀 흘리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던 분위기 속에서 달리기는 늘 낯설기만 했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숨이 차고 무릎이 아픈 것도 당연하게 여겼다. 운동화 끈을 맬 때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내 몸을 내가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헬스장에 등록하고 요가 수업도 들어봤지만, 야근과 출장이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정해진 시간에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언니의 권유에 마음이 움직였고, 집에 있던 운동화를 꺼내 동네 골목을 천천히 걷듯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런데이 앱을 만나게 됐다. 초보자를 위한 8주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걷기와 뛰기를 번갈아 하며 점점 30분 연속 달리기를 목표로 나아가는 구성 덕분에 큰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었다. 마치 나 같은 사람을 위한 프로그램 같았다. 매일 조금씩 늘어가는 거리와 시간, 점점 나아지는 숨결이 주는 기쁨이 컸다. 처음으로 ‘운동이 이렇게 좋을 수도 있구나’. '땀을 흘리니 상쾌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의 가장 큰 매력은 운동화 한 켤레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밤 10시가 넘어 퇴근한 날에도, 새벽에 눈을 떠 마음이 복잡한 날에도, 출장 중 낯선 도시에서도 달릴 수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어디에 있든 나만의 공간이 생기고, 나만의 속도로 살아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또 하나의 계기는, 큰아이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시작된 입시의 긴 여정이었다. 밤늦게 학원에서 돌아오는 아이 옆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지만, 불안한 마음과 조용한 응원을 담아 달리기를 시작했다. 아이가 공부를 하는 밤, 나는 골목을 달렸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목표를 향해 서로 응원하며 나아가던 순간이었다고 믿는다.
처음엔 혼자 달리거나, 나에게 달리기를 권했던 언니와 함께 뛰었다. 하지만 그 언니는 하프 마라톤을 뛸 정도의 베테랑이었고, 느린 걸음이 민폐가 되지는 않을까 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혼자 뛰는 날이 많아졌고, 그러다 보니 ‘비슷한 속도로 함께 달릴 수 있는 사람들과라면 더 오래, 더 즐겁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스포츠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러닝 크루에도 몇 번 참여해봤지만, 대부분 20대 위주의 빠른 러너들이 많아 내게는 맞지 않았다. 그러던 중 문득 떠오른 생각이 바로 동네 맘카페였다. 같은 지역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워킹맘들이 모인 카페, 생활 패턴도 비슷하고 나이대도 비슷한 이들과 함께라면 더 오래 즐겁게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아무튼 달리기’였다. 동네 워킹맘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 “같이 달릴 분 계신가요?”라는 글을 올렸고,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였다. 처음엔 20명 남짓한 인원으로 단톡방을 만들어 조심스럽게 시작했다. 다들 일하며, 육아하며 하루하루가 바빴지만, 잠시라도 숨을 고르고 싶은 마음만큼은 닮아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튼 달리기 시작했다.
이름도 《아무튼, 달리기》라는 책 제목에서 따왔다.
"어떤 이유에서든, 아무튼 달린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4년 반이 지난 지금, 크루는 50명이 넘었다. 런데이 앱과 단톡방 인증을 통해 서로를 격려하며 달리는 삶이 익숙해졌다. 팬데믹 동안 얼굴 한 번 못 본 채로 이어온 관계였지만, 이제는 정말 좋은 달리기 친구들이 되었다. 요즘은 주말 아침 오프 모임도 자주 가진다. 5km 정도 함께 달리고 나면, 이어지는 수다는 기본 2시간이다. 학원, 육아, 회사 이야기를 나누며 정보도 얻고 위로도 나눈다. 달리기보다 그 수다 시간이 더 기다려진다는 분들도 많다.
봄에는 벚꽃길을, 여름밤엔 반짝이는 한강을, 겨울엔 크리스마스 드레스코드를 맞춰 눈 오는 길을 달렸다. 누군가는 빠르게, 누군가는 천천히. 출장을 다녀오며 파리, 뉴욕, 바르셀로나 등 세계 여러 도시에서 인증을 올리는 분들도 많이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속도로. 그래도 “아무튼, 달린다”는 약속 하나로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아이 때문에, 회사 때문에, 마음이 복잡한 날에도
그냥 운동화 끈 묶고 나가서 달리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그 기분을, 나와 비슷한 워킹맘들과 함께 나눈다는 것.
그게 지금까지 달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다.
언젠가는 우리, 은퇴한 뒤에도
할머니가 되어서도
천천히, 함께 달릴 수 있기를.
아무튼, 달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