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풀마라톤

준비가 완벽할때만 도전한다면, 살면서 도전해볼 기회가 별로 없다.

by 커피맥주

아무튼 크루와 함께 달리면서, 주변에 풀마라톤 주자들이 엄청 많아졌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5년이 넘도록, 풀마라톤 도전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굳이?? 라는 마음이 컸다.

난 늘 최선을 다해 살아오지 않았다. 적당히. 튀지않게. 90%정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결과에 매우 만족해왔다.

전력을 다하고, 애를 쓰고, 승부욕을 불태우는건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주변에 풀마 주자들이 많아지다 보니, 42.195를 뛰고 난뒤의 느낌이 궁금해졌다.

너무너무. 힘든가? 뿌듯한가? 뭐가 그리 좋을까?

궁금하면 해보는 내 성격에, 달리기 시작하고 5년이 지나, 처음 풀마라톤을 신청해 보았다.

그것도 우리나라 3대 마라톤중의 하나인 JTBC 마라톤대회를.


그동안 그래도 꾸준히 달려올 수 있었던건. 페이스 상관없이, 뭔가 대회를 염두에 두는 훈련이 아니여도, 그냥 막 달리면, 내가 나의 가치를 높이는 것만 같아 좋았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해서 스스로 달리고, 힘들게 달리고 난뒤의 나는 너무너무 기특하다. 내자신이 나를 칭찬하게 된다. 그러니깐 그냥 느려도 계속 달렸다.


사실 여전히 나는 풀도전하기에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준비가 완벽할때만 도전한다면, 살면서 도전해볼 기회가 별로 없다 !

그냥 해보면 어떤가?!?!?

도전자체에 의미를 두고싶었다.

내 첫 하프대회 기록도 3시간이 넘었다. 지금은 2시간 18분대.

풀도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다카키 나오코의 만화를 보면 풀 첫도전의 팁이 많이 나온다. “ 여기서 힘을 내지않으면 어디서 힘을 내겠어 !!!”. 맘에 든다 !


D-14

드디어 2023 JTBC 마라톤 배번이 도착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연 느낌.!!


D-7

풀마 첫도전.

목표는 5시간내 완주. 훈련이 충분하지도 않았고, 체중도 아직 무겁다 ㅠㅠ. 준비는 미흡하지만 마음은 뿜뿜 !!

오늘은 대회전 마지막 훈련으로 군자역-길동사거리-올공-수서역까지 jtbc 코스중 25k-35k 구간을 달려보았다.

대회때마다 미지의 코스를 달리다보면 엄청 답답하기에 (이 오르막은 언제 끝나 ㅠ. 왜이리길어. 오르막은 또 나오나? 등등 ), 미리 중간 코스를 슬슬 달려보았다.

초반부터 오르막이 있다보니 ( 군자역-천호대교 북단 까지 계속 오르막.) 다리가 계속 무겁게 달렸다 ㅠㅠ.

마지막 수서ic부근도 오르막 구간. 경사기 급하진않고 계속 완만한 오르막-내리막의 반복. 페이스조절도 쉽지 않다.

사람들을 피해달리느랴 웃겼고, 보도블록길에 중간에 한번 턱에 걸려 넘어질뻔도 하고.

그럼에도, 미리 달려본게 다음주에 도움되길!!


D-0 드디어 대회.

드뎌 풀이다. 첫풀.


출발전.

상암. 다행이 비는 안오고, 잔뜩 흐린 하늘.

출발선에서는 기다리는데 계속해서 신발끈이 신경이 쓰였다. 발목 테이핑을 평소에 안해서인지 이질감이 있다. (역시 평소에 안하던건, 안하는게 맞았다. ㅠ) 오른쪽 신발끈을 몇 번을 풀고 묶기를 반복했다. 발목통증이 있기에, 테이핑을 포기할 순 없다.

오늘의 전략은 6:30으로 하프 이상 최소 25k까지는 달려보자. 그리고 (lsd 훈렸했었던) 37k 까지는 7:00넘지않게 달리고, 그 이상은 아무리 힘들어도 평균페이스 700을 넘기게는 하지 말자.였다. 5시간 이내 완주가 목표다.


5K 지나면서..

컨디션은 나쁘지 않다. 역시나 페이스가 자꾸 빨라져 (5분후반~6분초반) 6:20~6:30으로 낮추려고 계속 노력을 했다.사실 장거리를 하다 보면 몇 km를 뛰었는지 아무 의미가 없다. 가끔씩 페이스만 확인하면서, 그냥 달린다. .


10K 지나면서..

초반에 걱정했던 공덕역 근처의 오르막길은 생각보다 가파르지 않다. 비도 아직은 안온다.

충정로를 지나 시청앞을 광화문에서 우회전을 한다. 비가 후두둑 내리기 시작한다.


15K 지나면서

출발전 미리 먹었어야 했던 액상 마그네슘을 먹고 첫 에너지젤도 먹었다. 그후 에너지젤은 5~7K 정도 간격으로 먹었다. 물은 5K마다 있는데, 한모금 마시고 한모금 헹구고를 메번 했다.

광화문-종로를 지나면서 이젠 비가 꽤 내리기 시작한다. 백수같은 비주얼 (떡진머리 츄리닝 풀린눈) 30대 남자분이 우산쓰고 옷따뜻하게 입고 지하철 환풍기위에 앉아 병맥을 컵에 우아하게 따라 마시고 있었다. 우리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니들이 참 고생한다. 눈빛. ㅋ 그분이 위너!

신발속으로 물이 들어가기 시작하고, 발바닥 테이핑이 빗물에 불기 시작한다. 오른발에 이물감이 크다. 멈춰서 빼고 갈까 고민을 한다. 그래도 아직은 물웅덩이를 피해서 달릴만 하다.


20K 지나면서

이제 하프 지났다. 지금까진 워밍업..본격적으로 시작이다. 근데, 비가 점점 굵어진다.

동대문을 지나, 신설동역에서 우회전해서 동대문구를 가로질러 간다. 대체로 계속 평지다.

쥐가 나는지 옆에 난간잡고 스트레칭하는 분들이 점점 눈에 띄기 시작한다. 가끔씩 앰블런스도 지나간다.

페이스가 느려지는듯 하다..코스답사를 해봤던 군자역까지만 어떻게든 가보자 ! 나자신을 달래본다.


25K 지나면서

드뎌 군자역이다. 대회 전주에 군자역부터 수서역까지 코스답사로 가볍게 뛰어봤던 곳이라, 왠지 마음이 편해진다. 나에게는 코스답사가 주는 안정감이 크다. 근데, 이제부터 긴~ 오르막-내리막의 반복.

이와중에 전화가 온다. 남편이다. 받을 힘이 없어서, 안받았다. 이 지점부터, 내가 온라인으로 트랙킹이 안되어서, 내가 포기한 줄 알았단다. ㅎㅎ

비는 점점 세차지고, 이젠 첨벙첨벙 수준이다. 도저히 물웅덩이를 피해 달릴길이 없다.

신발속 테이핑은 비에 불어서 점점 뚱뚱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이물감이 너무 크다. 그러다보니, 발바닥이 저리다. 쥐가 날것만 같다.. 멈춰서 뺄까를 계속 고민한다. 그렇지만, 멈췄어다가는 다시 달릴수 없을것만 같다...발가락만 꼬물거려본다.

배가 고파져, 급수대의 바나나도 하나 먹었다.

기나긴 오르막을 지나, 천호대교를 건너는데...최악의 날씨다. 비바람+돌풍 세트. 너무 춥다. 달리면서도 춥다고 느낀건 정말 처음. 멈추면 더 추울것 같아, 어쩔수없이 달린다. 한강다리 위라, 지하철을 탈래도 일단 건너야 한다.

누군가 사진을 찍는데, 웃을 힘이 없다. 그냥 썩소를 날린다. 활짝 웃으며 달리고 싶은데~


30K 지나면서

드디어 한강을 건너 길동사거리에서 우회전...다행히, 비가 수그러 들다가...멈추기 시작한다. 그이후론 비가 안왔다. 너무너무 다행 !!

길가엔, 누워서 쥐를 푸는 사람들, 헛구역질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다 다시 뛰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거의 좀비처럼 걷뛰를 한다. 눈물겨운 의지...속으로 응원을 보낸다. 중간에 파스를 들고 뛰어 다니면서 여기저기 러너들에게 뿌려주는 사람도 있다. 멈추면 안될것 같아, 파스도 못뿌리겠다. ㅠㅠ

발바닥 이물감이 크다. 발바닥 쥐날것 같은 느낌이 뒤허벅지로 이어진다.

왼쪽 허벅지 뒤쪽이 당긴다. 이러다 이게 꼬이면 쥐나는거구나 ! (lsd 훈련때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느낌!!) 일부러 다리를 번쩍번쩍 들며 달리는중 스트레칭하기도 하고 틈틈이 양쪽 발가락을 계속 꼬물락꼬물락대면서 발가락을 풀어주었다. 쥐야 올라오면 안돼!!

올공을 지나간다. 많은 응원단들이 내 이름을 외쳐준다. 배번표에 이름이 왜 이렇게 크게 적혀 있나 했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는 거였다.


35K 지나면서

드디어 송파구로 들어선다. 응원단들이 많아진다.

훈련을 37K 까지 했기에, 그 이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그 즈음 만나, 같이 달려달라 부탁을 했었지만,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오지말라 했었다. 그런데, 중간에 트랙킹도 안되고 하니, 걱정되는 맘으로 약속장소 (37K, 헬리오아파크 단지 입구) 로 나와줬고, 마지막 5키로를 같이 달려주었다. 대신 달려주는건 아니지만, 지루했던 길에 큰 위로가 되었다.

수서역 유턴 즈음 38K 지점에서 누군가 주는 꿀물을 먹었고 마지막으로 소금 사탕을 물고 마지막까지 달렸다. 입속의 사탕이 작아지고 있는게, 그래도 시간이 흘러간다는 느낌을 줘서 위로가 된다. 끝나가고 있어 !!

역시나 훈련을 한 37K까지 비교적 잘 달리다가 마지막 5K가 정말 힘들어지면서, 페이스가 730이후로 아주 느려졌다. (그전까지는 느려도 7분초반대로 달려왔다.)

수서역 유턴을 지나니, 짧지만, 급오르막이 두 번 나타났다. 길지는 않았는데, 막바지에 정말 너무한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40K 지나면서

막바지 잠실 종합운동장 역까지 가는 마지막 2K가 정말 길게 느껴졌다. 드뎌 페이스는 8분대 초반으로 넘어갔다. 마지막 좌회전해서, 마지막 200m 만 달리면 된다고..힘겹게 달리는데, 어디선가 무지 큰 소리가 들렸다. 우리 크루 두 분의 응원이었다. 굉장히 소리가 컸다. 정말 듣는 순간 갑자기 울음이 확 올라오면서 신기하게 힘이 났다. 너무너무 무거웠던 다리가 가벼워지면서 마지막 200m를 정말 쉽게 달릴 수가 있었다. 너무너무 감사 !!

드뎌 피니쉬!! 목표가 5시간이내였는데, 다행이 4시간 52분으로 무사완주 !!


피니쉬후.

울지 않을까 싶었는데, 너무 힘들어서 울힘도 없었다. 발바닥에 박혀버린것 같은, 테이핑을 얼른 없애고 싶다.

내 발바닥이 동그래진 느낌. 다리는 너무너무 아팠고, 너무 추웠는데, 그 추운 와중에, 삼일간 못마셨던 아아를 얼릉 사서 먹었다. ^^ 짐찾아, JTBC 로브 입고, 신발 벗고 슬리퍼로 갈아신으니, 그제서야 몸이 좀 편해진다.


D+1 하루지난후.

몸을 계속 따듯하게 해주는데도 춥다. 몸살이 올것만 같은 기분으로, 에너지가 딸리는 느낌. 잘먹고, 잘자고, 잘 쉬어야겠다.!! 허벅지 위쪽과 발가락쪽/그아래 발바닥이 너무 아프다. 건드릴수 없을 만큼. 테이핑을 해서, 발목을 건지고, 발바닥을 잃었다. ㅎㅎ



드.디.어. 첫풀 완주.

2023 JTBC 마라톤 완주 !!

도전하기 무서워 시도조차 안하던 바로 그 도전을, 막연하게 꿈꾸고, 오늘 드뎌 현실이 되었다 !!

무모해보이더라도, 내가 원하는꿈을 꾸고, 스스로 도전해보고, 그 꿈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고, 그래서 행복한 하루였다.

엄청 힘들었다. 그치만 엄청 뿌듯하다. 아파트에 현수막 걸어달라고 하고 싶고, 방송국에 나 달렸다고 제보하고 싶고, 메달 걸고 다니고 싶다. ㅋㅋ 할수있는건, 오직 카톡으로 동네방네 자랑하는거~~~

아무도 내게 강요하지 않았고, 내가 도전해서, 내 두발로 이뤄낸 것이기에, 큰 의미가 있다.

다음은 해외마라톤이다. 2024년 봄 나고야우먼마라톤.


끝!! 쉬자!! 일하자!! 마시자!!





금요일 연재
이전 03화아무튼 달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