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다같이 Sub5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함께 달렸기에 더 완벽했던 2025 서울마라톤

by 커피맥주


2025년 3월, 나는 세 번째 풀마라톤을 서울에서 뛰었다.

이번 서울마라톤을 준비하며 'BK 클래스'라는 러닝 프로그램에 등록해 주 2회 훈련에 참여했지만, 여러 일정들로 절반도 채 소화하지 못했다. 그래도 우리 러닝 크루의 베리 님과 함께 시작한 클래스였기에, 서로 의지하며 훈련을 이어갔다. 남산 순환 코스를 두세 바퀴 돌고, 마지막엔 올림픽공원에서 30km 장거리 훈련을 7:00 페이스로 마무리했다. 그때 베리 님과 잘 달렸기에 대회 당일에도 함께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베리 님은 이미 하프 마라톤을 6:00 페이스로 뛰는 빠른 러너였다. 장거리 훈련도 무리 없이 소화했기에, 나는 그가 훨씬 좋은 기록으로 완주할 거라 믿었다.

나의 첫 풀마라톤은 2023년 JTBC 마라톤이었다. 목표는 6:30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었지만, 25km를 넘기며 페이스가 무너졌고, 특히 마지막 5km의 오르막은 너무 힘들었다. 평균 페이스는 7:00, 기록은 4시간 52분이었다. 이번 서울마라톤에서는 6:50 페이스로 끝까지 밀어붙이고 싶었다. 7:00 페이스로 훈련을 했으니 그대로 갈까, 아니면 욕심을 내볼까 고민했다.

대회가 가까워질수록 여기저기서 부상 소식이 들려왔다. 베리 님도 그중 하나였다. 30km 장거리 훈련 직후, 고구려 마라톤 32km에 참가했는데, 20km까지는 가볍게 달렸지만 이후 갑작스러운 통증으로 DNF(중도포기)했다. 병원에서는 장경인대 부상이라며 서울마라톤을 뛰지 말라고 했다. 베리 님은 배번을 반납할 예정이었고, 내년 대회를 기약하겠다고 했다.

또 다른 크루 오렌지 님도 비슷했다. 서울마라톤을 목표로 오픈 케어 프로그램을 신청했지만 체력 문제로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고, 가장 긴 LSD(롱 슬로우 디스턴스)도 20km뿐이었다. 결국 부상으로 훈련을 중단하고 배번을 반납하기로 했다고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오렌지 님은 풀코스를 뛰기엔 아직 준비가 부족하고, 베리 님은 부상으로 힘들겠지만 워낙 실력이 좋기에 완주는 가능할 거라고. 그래서 베리 님에게 말했다.

"기록이 목표가 아니면, 한 번 그냥 LSD라고 생각하고 뛰어보는 건 어때요? 꼭 PB(개인기록)를 내야만 마라톤이 의미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저랑 6:50~7:00 정도로 천천히 같이 달려봐요."

원래 빠른 러너였던 베리 님에게는 느린 페이스였고, 나에겐 도전적인 페이스였다. 그렇게 베리 님은 "그럼 나가볼까요?" 하고 대회에 나서기로 결심했고, 결국 유쾌한 베리 님은 오렌지 님도 꼬셔서 우리 셋이 함께 뛰기로 했다.

완벽한 준비가 되어야만 수능을 보거나 마라톤을 뛸 수 있다면, 우리는 평생 아무것도 못 할지도 모른다. 언제나 도전의 기회는 불완전한 시점에 온다. 준비가 부족하더라도, 결과가 최고가 아니더라도 그 도전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셋은 함께 천천히 달려보기로 마음먹었다.


비 오는 아침, 웃으며 출발하다

드디어 대회 당일. 부슬비가 내리는 서울의 아침, 우리는 다른 크루들과 함께 모여 몸을 풀고 사진도 찍으며 즐겁게 준비했다. 부상을 안고 있던 베리 님은 진통제 250mg 두 알을 준비하고, 유명한 대만 파스를 양쪽 장경인대에 붙인 채 긴 레깅스를 입고 나타났다. 우리는 G조, 가장 마지막 조에서 나란히 출발했다.

출발 전 우리는 "나중에 힘들 수도 있으니 6:50 페이스로 쭉 밀어보자"고 결정하고 종로, 청계천을 지나며 셋이서 잘 달렸다. 하지만 10km를 넘기며 오렌지 님이 통증을 호소하며 진통제를 찾았다. 베리 님이 챙겨온 약을 나눠줬지만, 통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게다가 오렌지 님은 전날 새로 산 신발을 단 4km만 신어보고 마라톤에 나섰고, 신은 발가락 양말도 불편하다고 했다. 결국 18km 지점에서 편의점에 들러 진통제를 사고 양말을 갈아신기로 했다.

그 후, 베리 님과 나는 둘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6:50 페이스를 유지했다. 오렌지 님은 아마 30km까지만 뛰고 지하철을 탈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살짝 걱정도 했지만, 베리 님과 함께 달리며 페이스를 유지해갔다.

38km 지점. 슬슬 체력이 떨어지면서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때 베리 님이 물었다.

"커맥님, 힘들어요?"

나는 웃으며 "먼저 가세요"라고 했다. 사실 38km까지 함께 달려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웠다. 하지만 베리 님은 의리를 지키며 끝까지 같이 달려주셨고, 함께 잠실대교를 건너며 힘든 순간을 넘길 수 있었다. 잠실타워가 눈앞에 보이자 다시 컨디션이 살아나, 다시 6:50 페이스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반가운 목소리.

"베리!! 커맥님도 여기 있네!"

놀랍게도 오렌지 님이 우리를 따라잡은 것이었다! 진통제 사고, 양말 갈아신고도 모자라 20km 가까이를 혼자 달려와 우리를 찾은 것이다. 정말 대단했다.

그때 베리 님은 또 진통제를 오렌지 님에게 하나 더 달라고 했고, 둘은 사이좋게 나눠 먹으며 마지막 구간을 함께 달렸다. 오렌지 님은 전해질 사탕도 나눠주며 다시 셋이 달렸다. 그렇게 셋이 거의 동시에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고, 평균 페이스 6:50, 기록은 4시간 51분이었다.


함께 달리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준비가 부족했음에도, 중간에 통증과 불편함이 있었음에도 끝까지 우리를 찾아 완주한 오렌지 님, 훨씬 더 빠른 기록도 가능했지만 끝까지 함께해준 베리 님, 그리고 그런 둘과 함께할 수 있어 너무 감사했던 나. 정말 유쾌하고 감동적인 레이스였다.

완주가 목표였던 두 사람에게 이번 풀코스는 큰 의미였고, 그 기쁨은 기록 이상의 것이었다. 만약 두 분이 ‘나는 준비가 안 됐으니까’, ‘다칠까 봐 무서우니까’라며 도전을 포기했다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도전을 선택한 순간부터 이미 그 결과는 달콤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풀피니셔 모임에서 즐겁게 술도 마시고, 서로의 이야기에 웃으며 박수를 쳤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특히 오렌지 님은 전날 산 새 신발 신고, 약국 들르고, 양말 갈아신고도 끝까지 완주한, 정말 흥미롭고 유쾌한 러너였다. 완벽하지 않은 준비로도, 때로는 그런 도전이 더 값지고 더 기억에 남는다.

이번 서울마라톤은 나의 세 번째 풀마라톤이자, 가장 따뜻하고 유쾌한 마라톤이었다. 완벽한 준비는 없지만, 함께 달리는 마음이 있다면 어떤 레이스든 충분히 완벽할 수 있다. 도전은 늘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그 아쉬움 덕분에 우리는 또다시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