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족해도 괜찮아, 그게 나니까

내가 하고픈 대로, 내가 생긴 결대로

by 커피맥주

나는 간혹 우리나라의 정서가 나하고 잘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미국에서 지냈을 때 그곳의 바이브(성향)가 나와 더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때 물리 시험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문제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비탈길을 내려가는 어떤 물체에 무게와 속도가 주어졌을 때, 거기에 가해지는 힘 같은 것을 구하는 문제였다. 사실 중학교 수준에서는 ‘마찰력이 없다’는 가정이 있어야만 하고 대체로 문제집이나 교과서에는 그 조건이 써져 있는데, 선생님이 낸 중간고사 문제에는 마찰력이 없다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시험 보는 내내 그걸 굉장히 고민했고, 그것까지 고려해서 답을 적었다. 그게 오답이였다.

나중에 선생님께 가서 “선생님, 여기에 이 가정이 빠진 게 아니냐. 나는 이것 때문에 되게 헷갈렸다”라고 질문을 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중학교 수준에서는 그 가정이 당연한거고, 그걸 따지는? 나의 태도가 선생님의 지적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했고 나를 굉장히 혼냈다.

당시 나의 태도가 선생님이 보기에는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을 수도 있겠으나, 내가 지금 어른이 된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어 그래, 그럴 수도 있고 내가 그 가정을 정확히 썼어야 하는게 맞다. 미안하다”라고 잘못을 인정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선생님은 나를 오히려 굉장히 버릇없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그리고 그런 비슷한 일들이 내가 대학원 다닐 때도 굉장히 많았다.

또 하나의 예가 대학원 석사 과정 때였는데, 내가 앞선 선배의 실험을 해보고 계산을 하다 보니 이미 논문까지 나온 선배의 오류가 눈에 띄었다. 그래서 “이거는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라는 얘기를 선배한테 했더니 선배는 그걸 굉장히 기분 나빠했고 지도 교수님한테도 얘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근데 나는 그 실험 하에서 그다음 실험을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앞선 실험의 결과가 다르다면 내 실험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가 있어서 교수님한테 가서 “교수님, 제가 이걸 이렇게 해보니까 이게 틀린 것 같습니다”라는 얘기를 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선배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빴을 수 있다. 자기를 건너뛰고 간 거니까. 근데 내가 먼저 얘기를 했을 때 자기가 그걸 인정하고 같이 오픈 디스커션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 선배는 그걸 숨기려고 했고 없던 일 취급을 하려 했으며 “너가 뭘 알아?”라는 식으로 나오곤 했다.

다행히 내 얘기를 지도 교수님은 진지하게 들어주셨고 결국은 그 논문이 수정되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 선배하고는 졸업할 때까지 사이가 안 좋았다.


한국의 교육 환경에 있어서는 뭔가 실수나 잘못이 있었을 때 의문을 가지고 코멘트를 하면 버릇이 나쁜 사람 취급을 받게 되곤 했다. 반면에 미국에서 내가 있는 몇 년 동안은 그런 잘못에 대한 지적이나 오픈 디스커션을 통해 공론화하고, 같이 의논하고 해결점을 찾는 경험들이 많았다.


미국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내 의견을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였지만, 한국에서 내가 자라는 동안은 ‘뭔가 이상하고 틀린 게 있어도 내가 이걸 얘기하면 안 되는구나, 내 의견을 얘기하면 안 되는구나’ 싶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하지? 그냥 이 시스템에서 나는 뒤로 슬금슬금 빠지는 게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서, 적극적으로 앞에 나서서 뭔가를 한다기보다는 계속해서 뒤에서 지켜보는 형식으로 슬금슬금 물러나는 방식을 택했던 것 같다.


근데 내가 부모가 되어, 미국에서 애들을 초중고등학교에 보내보니 미국의 시스템은 완전히 달랐다. 미국은 숙제를 하나 내고 시험을 하나 볼 때마다 시스템에 퍼센티지로 성적이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업데이트가 된다. 그걸 보고 내 점수가 얼마인지 알 수 있고 각각의 숙제라든지 평가에 대해서 자유롭게 클레임을 걸 수가 있다. “점수가 왜 이렇게 나왔죠? 확인해 주세요”라든가, 뒤에 가서는 엑스트라 크레딧을 받을 수도 있다. 점수를 좀 더 따고 싶다면 “내가 참치캔을 도네이션 할 테니 엑스트라 크레딧을 줄 수 있나요?” 아니면 “내가 책을 몇 권 더 읽고 에세이를 써올 테니 점수를 주시죠”라는 제안을 할 수가 있다. 그렇게 해서 추가적인 노력을 하게 된다면 추가 점수를 주곤 했다.


그런 시스템들이 나같이 좀 적극적이고 능동적이고 어찌 보면 도전적인 성향에는 더 잘 맞았다. 그래서 한국은 뭔가 말을 하기가 조심스럽고 불편할 때가 많았고, 내가 그런 걸 얘기할 때마다 사람들은 대체로 불편해했다. 지금 나이 들어 생각해보니 같은 얘기를 하더라도 조금 더 부드럽고 듣는 사람이 편안하게 얘기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는 나도 어리고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뭔가 격려를 받고 “그래,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니?”라는 말을 듣기보다는 항상 “무슨 얘기야?” 하고 모른 척 당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담임 선생님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얘가 좀 문제 있다”라는 얘기까지 한 적도 있다. 그때 나는 전교 1등이었고 반장까지 했는데도 담임은 엄마에게 전화해서 “얘가 좀 요새 문제가 있습니다. 집에서 좀 살펴보세요. 자꾸 뭔가 이상한 얘기를 합니다”라는 식으로 순종적이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 나쁜 얘기를 했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서는 제도를 잘 지키고 그 안에서 순종적이고, 그 교육 제도가 바라는 인재상에 따라서 따라가고 규칙적으로 이뤄 나갔을 때 인정을 받고 칭찬을 해준다. 나는 그게 어려서부터 참 불편했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 받은 교육이 나는 참 힘들었고, 오히려 미국에 가서 일을 하고 공부를 할 때 좀 더 편안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지금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참 부럽다. 내가 미국에서 초중고 교육을 받았더라면 얼마나 더 재미있게 공부를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나는 순종적이어야 하고 어떤 제도 안에서 다듬어져야 한다고 교육을 받았고, 나중에 커서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뭔가 뾰족해지지 않으려고, 내 안에 다른 생각이 들어도 그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많이 참고 다듬고 숨기면서 일하고 공부해 왔던 것 같다.


근데 이제 나이가 어느 정도 들고 보니, 내가 무슨 불법적인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물론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서 지적하는 거는 상대방이 굉장히 기분이 나쁠 수 있겠다 싶어서 더 이상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뭔가 내가 도전을 해본다거나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게 아닌 일들... 내가 하고 싶은데 참는다거나 “쟤는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저러지”, “사회적으로 저런 지위에 있는 사람이 그런 걸 해도 돼?”, “여자가 저런 걸 해도 돼?”라는 그런 시선도 굉장히 불편했었는데, 그런 시선으로부터 이제 좀 자유로워져서 그냥 좀 내가 생긴 결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요새 디제잉도 해보고 싶고, 셔플 댄스도 배워보고 싶고, 드럼도 배워보고 싶고, 피아노도 다시 치고 싶고 등등... 더 나이 들기 전에, 50대에, 그동안 남 눈치 보느라 하지 못했던 것을 조금씩이라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호기심으로, 재미로, 궁금함으로 하나씩 하나씩 해보려고 한다.


내가 하고픈 대로, 내가 생긴 결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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