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호코 커피농장
덩치와 다르게 사람들은 내가 입이 까다롭다고들 한다.
까다롭지만 많이 먹는 나를 두고 요한의 동생인 즉 나의 시동생은 코끼리도 하루에 2톤의 풀을 먹어재낀다고 염장질도 한다.
풀도 많이 먹으면 살이 찔까.
먹는 것에 진심인 나는 특히 풀을 좋아한다. 물론 팔딱거리는 생선이나 몽글몽글한 두부가 끓는 된장찌개도 좋아한다. 그리고 지글지글 구워진 고기도 좋아한다. 그런데 가장 좋아하는 거는 풀이다.
양상추, 상추, 쑥갓, 양배추, 미나리, 취나물, 오이, 가지, 토마토, 시래기 이렇게 우적우적 씹어먹는 풀말이다.
미얀마에는 그런 풀들의 낙원일 거라 생각했다.
장을 보기 위해 시장에 나가면 알록달록 푸르고 붉은 채소가 널려 있다. 하지만 미얀마의 기온은 높고 장바닥도 더워서 야리야리한 채소들은 새벽에나 싱싱하지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 금방 시들고 누렇게 떠버린다.
높은 기온에도 비교적 잘 유지가 되는 채소는 공심채, 삼채, 풋고추처럼 생긴 오크라, 브로콜리, 우리나라의 호박잎처럼 생긴 물냉이, 아스파라거스, 강낭콩류의 단단한 채소이다. 그리고 토마토, 가지, 오이, 죽순을 많이 판다.
풀 좋아하는 나는 기어이 미얀마에서도 풀이란 풀을 다 먹어치울 기세로 장을 보았는데 큰 시장 작은 시장 다니면서 필요한 채소들을 구하고자 했다.
커피가 재배되는 지역은 고산지대라 채소들도 맛이 좋다.
한 번은 김치를 담그려고 배추를 구했는데 배추가 길고 가운데 심지가 단단하고 긴 거 빼고는 괜찮았다.
우리나라의 통배추 정도는 아니지만 얼갈이배추보다는 속이 좋았다. 무는 우리나라의 알타리보다 길고 가늘었는데 썰어서 버무리기에는 부족하지 않아 보였다.
문제는 고춧가루였는데 빻아진 고춧가루보다 통으로 된 고추를 사서 절구에 찧어야 제맛이 난다. 가루로 된 고춧가루를 잘못 사면 아주 시커멓게 김치가 버무려지니 사지 않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내가 제일 반가워하는 것은 토마토다. 미얀마의 음식에는 토마토를 응용한 음식이 많다.
우리나라처럼 생식용 토마토가 아닌 유럽이나 다른 나라들처럼 조림이나 구이 형태로 먹는 토마토라 생김새도 다르고 단단하다.
그런데 어느 식당에 가도 토마토를 이용한 샐러드를 주지 않는다. 토마토와 양배추 견과류를 섞은 샐러드가 있긴 하나 풀 좋아하는 나는 그냥 토마토를 베어 먹고 싶었다
자주 가서 묵는 호텔 숙소에 조식으로 주는 볶음밥과 볶음면을 하도 먹어 물려서 어느 날 토마토를 좀 줄 수 있냐고 하니 뭐 이런 아줌마가 다 있나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주방에 가서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고 나서는 구운 토마토를 내다 준다.
기름이 조금 많이 들긴 했으나 나는 맛있게 먹었다.
마구마구 퍼먹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대여섯 명의 직원들의 눈은 온통 나를 향해 있고 주방에서 음식을 내는 작은 구멍으로 요리사 모자를 두른 조리사도 빼꼼히 나를 훔쳐보고 있다.
저 한국아줌마는 꼭 코끼리 같구나 하고 생각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나만 가면 부탁도 안 했는데 토마토구이를 내온다.
먹기 싫은 날에도 나는 그들의 즐거움을 위해 기꺼이 토마토를 남김없이 퍼먹어주었다.
까웅레, 까웅레를 연발하면서 말이다.
덩치 큰 한국아줌마가 생토마토를 아주 맛있게 퍼먹더라는 이야기는 호텔 식구들에게 퍼져 나가다가 담벼락을 타고 올라가 길 건너 식당과 찻집으로까지 소문날 것이며 내가 길을 나서면 사람들은 내 뒤통수를 쳐다보며 "저기 생토마토 먹는 아줌마가 나타났다!!!" 하고 구경 나올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