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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 민 DAW MIN Mar 09. 2024

나사 하나 먹어볼래

#32 미얀마 호코 커피농장




시골생활은 겁나게 낭만적이다.

겨울이 긴 파주는 저녁 6시만 되면 깜깜절벽이다. 

눈에 뵈는 것이 없다.


분명 집집마다 사람이 살고 있을 텐데 시골 사람들은 불을 켜지 않는다.

통유리창으로 밖을 바라본들 칠흑 같은 어두움뿐이다.


삼방리에 처음 2006년 커피공장을 마련했을 때 그때는 겁이 없었다.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그건 아침과 낮에 해당하는 일.


남편을 도와 언니와 내가 커피공장으로 출근했다가 집이 있던 일산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뒤에서 누가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초긴장을 해서 도착할 때까지  오싹오싹 무서웠다.



칠흑같이 어두운 도로를 달리다 보면 멀리서 비추는 자동차 불빛이 반갑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가끔 검은 도로를 걸어가는 사람을 만나기라도 하면 깜짝 놀라서 헉 소리가 절로 났다.


그런 심심산골에서 뭐 하나 고장이라도 나면 그건 순전히 요한의 몫이었다. 아파트 관리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문밖에 슈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마트는 더더욱 요원한 일.


수도가 얼면 드라이기를 들고 보일러가 새면 몽키드라이버를 들고 전등이 나가면 의자를 붙잡아주고 요한과 나는 산골 공장 생활에 적응해야 했다.


파주는 특히 겨울이 춥고 길어서 고독하다. 

주인을 기다리는 복실이는 밤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친한 친구가 사는 울산에 놀러 갔다 오면 들에 나 있는 푸성귀와 시금치와 배추 이런 것들이 얼마나 이쁘고 반가운지 모른다.


오늘은 또 어떤 일이 기다라고 있을까.


나사통을 들고 서 있는 내게 요한이 말을 건넨다.


“나사 하나 먹어볼래?”

그렇게 웃어야 줄줄 새는 보일러 배관을 고칠 힘이 난다.

“ 우리 늙으면 설비집 할까? 부부 설비”

“이미 늙었지. 얼마나 더 늙어서 하려고?”

“그러네..”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만 두드리던 요한의 손은 곰발바닥 같이 두꺼워졌다.


내손은 말할 것도 없이 커지고 두꺼워져서 지하철이라도 타고 앉았으면 곱고 야리야리한 도시 여자들 틈에서 커다란 내손이 창피해 주먹을 쥐고 있을 때도 있다.


웨웨는 얼굴이 영화배우처럼 이뻤다.

키가 크고 날씬하고 눈이 동그란 전형적인 미인형이었다.


어느 날 아침 마당을 쓸던 위웨의 손을 보고 깜짝 놀랐다.

손이 너무 커서 빗자루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이곳저곳 커피농장에서 체리를 따고 삽을 들고 땅을 파던 웨웨의 손은 그녀의 노동만큼 단련되고 단단해졌을 터 인형처럼 이쁜 웨웨를 생각할 때면 웨웨의 손이 떠오른다.


이제 뭐든지 다 고칠 수 있을 거 같다.


파주와 호코는 많이 닮았다. 깊은 밤까지 닮았다. 

미얀마 농사꾼의 손에서 자란 형형색색의 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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