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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은 Jan 06. 2021

방황자들

우리는 모두 방황하고 있다

런던에 온 지 삼일차가 되던 날. 4인실 호스텔 안에서 내 알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전 10시임에도 불구하고 사방이 깜깜했고 아직까지 깊이 잠들어있는 외국인 친구들을 보며 ‘역시 한국 사람들은 부지런함이 일등이지.’라고 속으로 흐뭇해하며 제일 먼저 나갈 준비를 했다. 밖을 나서니 11월의 런던은 우리나라보다 비교적 덜 추웠고, 겨울 외투 하나로 무난하게 추위를 버틸 수 있는 날씨였다.


유랑 카페에서 동행하기로 했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노팅힐 역으로 향했다.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 이렇게 세명이 함께 모여 그날의 노팅힐 동행이 만들어졌다. 그들은 둘 다 20대였고, 한 명은 20대 중반인 나와 동갑이었다.


나와 동갑인 그는 대학교 휴학을 내고 1년간 세계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여행을 하면서 부족한 돈은 한인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여행비를 충당하고, 숙소는 게스트하우스 스텝으로 일을 하며 무료로 제공받았다. 그는 문제가 생기면 바로바로 해결해 나간다고 했다. 그는 모험적이고 도전적이었으며, 종착지를 정해놓지 않은 자유로운 여행자였다.


또 다른 한 명은 오래 다녔던 직장을 퇴사한 후 여행을 왔다고 했다. 반복되는 일상에 많이 지쳐있었고, 그도 나처럼 새로운 꿈을 찾고 싶어 했다. 그의 여행 목표는 그동안 못 해봤던 것들을 최대한 많이 경험하고, 보고 싶었던 축구를 마음껏 보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세 사람은 비슷한 연령대와, 같은 한국인이라는 동질감이 느껴져서인지 처음 본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런던의 노팅힐 거리를 함께 걸으며 최고의 인생 샷을 남겨주기 위해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고, 함께하니 주머니 부담도 적어져 비싼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도 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앞으로의 여행정보에 대해서도 공유했다.


우리는 나이도, 사는 곳도, 여행 루트도 모두 달랐지만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한국으로 돌아가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말이다. 우리는 계속 방황하고 있었다.


우리는 학교에서 배우는 이론적이고 딱딱한 교과서 공부가 아닌 좀 더 넓은 곳에서 삶을 배우고 싶었다. 여행을 하면서 직접 한계에 부딪쳐도 보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하나씩 알아가고 싶었다. 여행하는 만큼은 걱정과 불안을 잠깐 접어둔 채, 오늘 하루하루에 집중하면서 말이다.


우리에겐 돌아갈 곳이 있기에, 돌아가서 예전의 나보다 조금 더 잘 살아보고 싶기에 우리는 여행을 하고 있었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서 류시화 시인은 말한다. "먼 길을 돌아 '곧바로' 목적지로 가는 것, 그것이 여행의 신비이고 삶의 이야기이다. 많은 길을 돌고 때로는 불필요하게 우회하지만, 그 길이야말로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 수 있다."라고.     


어쩌면 우리는 지금 충분히 방황해도 된다는 것, 꿈이라는 건 없어도 된다는 것을 확인받기 위해 여행을 떠나왔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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