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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은 Jan 05. 2021

퇴사하겠습니다

퇴사는 유럽여행을 싣고

“팀장님 저 퇴사하겠습니다.” 내 말 한마디에 그의 눈은 동공 지진 난 듯 흔들렸다. 그도 그럴 듯이 곧 있으면 나는 재직한 지 1년을 앞둔 시점이었고, 업무에 별 탈 없이 8개월가량 화기애애하며 잘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럽 여행을 가고 싶어요. 지금이 아니면   없을  같아요.” 그렇게 나는 갑작스레 퇴사를 통보했고, 주어진 인수인계 기간은  달이었다. 유럽여행을 간다는  외에는 정해계획은 딱히 없었다.  달이라는 시간 동안 짧게 집중적으로 계획을  생각이었다.


퇴사를 통보하고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했다. 이번엔 잘 다니는가 싶었던 직장을 관두었다는 말에 일차로 당황스러워했고, 혼자 한 달 뒤 유럽으로 떠나겠다는 말에는 포기했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으셨다. 유럽 여행을 가고 싶다고 몇 년 전부터 노래를 불렀던 게 예방 주사를 놓은 셈이었다.

그날 밤 내가 진짜 꿈꿔왔던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 잠이 오지 않았다. 일단 저질러놓긴 했으나 ‘혼자 가서 해코지를 당하는 건 아닌지’, ‘매일 정해놓은 길로만 다니는 길치인 내가 잘 돌아다닐 수는 있을지’, ‘여권을 도둑맞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혹여나 비행기가 추락하거나 테러를 당해서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건 아닌지’ 등등 설렘은 금방 두려움으로 바뀌어 부정적인 생각들로 머릿속을 휘저었다.


유럽여행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사진과 책으로만 봐왔던 유럽의 모습이 궁금했다. 한국과는 달리 몇십 년 된 성 모양의 건물로 이루어진 거리의 모습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하는 여행을 하면 잃어버렸던 내 모습을 되찾을 것 같았다. 멋모르고 패기 넘치던 어린 시절 때의 자신감,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는 나의 꿈, 처음 만난 사람과 색안경 없이 어울렸던 내 모습, ‘안될게 뭐가 있어’라며 앞뒤 안 가리며 무조건 도전하고 봤던 정신력까지 전부 내가 되찾고 싶은 것들이었다. 하루하루 지루함이 반복되는 일상에 나는 ‘나’를 점점 잃어갔고, 그럴수록 나는 더 여행을 갈망하고 있었다.


한 달 뒤 여행을 떠나는 디데이 날. 최대한 짐을 뺏는데도 캐리어의 배는 터질 듯이 빵빵했다. 한 달 동안 입고, 먹고, 씻는 짐과 컵라면과 김치 등을 캐리어에 옮겨 담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최종적으로 준비물 체크 리스트 표까지 점검하고 나서야 준비를 끝마쳤다.

캐리어를 이끌고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기분이 참 복잡 미묘했다. 평소 퇴근할 때 우연히 버스정류장에서 캐리어를 쥐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갔었다. 감출 수 없는 옅은 미소를 띤 채로 버스를 기다리는 그들을 보면 ‘행복해 보이네. 나도 떠나고 싶다.’라며 부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여행은 집을 나와 공항으로 향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공항버스 의자를 최대치로 눕힌 채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그제야 조금씩 떠난다는 실감이 났다.

공항에 도착해 짐을 붙이니 투명한 유리창 밖으로 대기 중인 비행기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비행기들은 비장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준비됐어.”라고 말하며 승객들을 기다리는듯했다.

이제 내가 탑승할 비행기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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