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은 Jun 16. 2022

나를 위로해주는 건 사람이 아닌 사물

나를 내일로 나아가게 하는 것: 맥주 한잔과 맛있는 안주, 그리고 음악

나는 회사를 다닐 때 자주 억울한 사람이었다. 물론 그 억울함은 티를 전혀 내지 않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내면의 감정이었다. 내 업무 방식을 이야기하자면, 맡은 일을 굉장히 열심히 한다. 묵묵하게 앉아서 자신의 업무를 조용하게 처리하는 편이고, 성과가 나더라도 어필하는 것이 민망하고 멋쩍어서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 않았고, 타인이 보기에는 ‘열심히는 하지만 열심히만 하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으로 비쳤다. 그래서 대표나 상사에게 자주 듣는 말이 있었다.

 “열심히는 하는데..”, 또는 “열심히만 하면 안 되고 잘해야 하는 거야.”라는 말. 이상하게 그런 소리는 자주 들어도 만성이 되질 않았다. 매번 나에게 새로운 상처를 남겼다.


그런 날이면 ‘나 같은 사람은 회사를 다니는 게 안 맞는 건가’라고 생각하며 그날의 기분을 달래줄 술안주를 생각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예능을 틀어 놓고 곱창에 소주 한 잔을 하면 그날의 노여움이 알코올에 날아가곤 했다. 생각해보니 우리 집엔 나 같은 사람(열심히 한 만큼 성과가 나지 않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그 사람은 바로 우리 아빠다.

당신은 매일 아침 6시에 출근하여 저녁 10시까지 일을 한다. 365일 중 350일 이상 일을 하고 먼지와 철가루가 뒤덮인 공장에서 혼자 열심히 기계를 깎고, 만들고, 칠해서 늦은 저녁이 다되어서야 기름때에 찌든 시커메진 손을 이끌고 퇴근을 한다. 이렇게 성실하고 열심히 일을 하지만 노력에 비해 성과는 턱없이 부족하다. 매달 돌아오는 건 갚아도 갚아도 풍선처럼 계속 부풀어만 가는 대출금과 카드 값 명세서였다. 경제적으로 여러 번의 고비가 지나가다 보니 이제 우리는 오뚝이라 자칭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세상은 왜 열심히 하는 자를 알아주지 않을까. 왜 ‘열심히 잘’을 그렇게 강요하는 걸까. 매번 억울하고 이해가 되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삶은 억울함의 연속이니까.


오늘도 나를 달래주는 건 역시 사람이 아닌 사물이다. 지친 나를 위로해주는 건 LANY의 음악 소리이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맛있는 곱창이고, 속을 뻥 뚫어주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이고, 자존감을 높여주는 책 한 권이고, 나를 웃음 짓게 만드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 모든 것들이 나를 내일로 나아가게 만든다.


 ‘그래, 나라도 알아주지 뭐. 내가 열심히 하는 건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까. 적어도 나에겐 떳떳하잖아.’

 

이 정도면 충분한 거 아닌가?


그렇게 오늘도 자기 합리화로 마무리를 하며 편안한 잠에 드는 밤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를 바뀌게 하는 건 챌린저스 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