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에스프레소 머신이 저의 주방 한편에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퇴근 후 집에 가니 현관문 옆에 커다란 두 개의 상자가 저를 반기더군요. 몇 년간 그토록 사고 싶었던 것이기에 반가워야 할 존재이건만 어쩐지 그 순간만큼은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총 합 백만 원가량 투자한 탓일까요. 이걸 활용해 뭔가를 증명해 내보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우선 머신을 꺼내 부품을 조립하고 쓸 수 있는 형태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어쭙잖은 성취감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도징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무리 정량 18g과 에스프레소 분쇄도를 맞춰 도징을 해도 추출이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시행착오는 계속되었습니다. 유튜브에 계신 수백 명의 선배님들 영상을 보고 따라 해도 추출 결과물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더군요.
무딘 실력 때문에 값진 원두들은 차례로 순교를 당했습니다. 아까운 원두들이 희생당하는 과정에 손수 가담하며 원두 살인귀 같다는 생각이 들어 죄책감까지 들었습니다. 아까운 나의 원두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계속)
번외. 오랜만에 카페라티노에 가서 예가체프 200g을 사 왔습니다. 이 원두 생각보다 아주 좋았습니다. 그런데 추출 실패로 버린 양이 절반이라 아직도 속이 좀 쓰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