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동치미

by 이강

밭에서 갓 뽑혀 흙이 더덕더덕한 무가 마당 옆 수돗가에 수북하게 쌓여있다. 다리 밑에서 뽑아 온 무다. 외할머니가 틈틈이 다리 밑 좁고 긴 꼬랭이 같은 밭을 일구고 가꿔 쪽파며 무, 배추 등 김장거리 채소를 거뒀다.

새벽에 아빠가 뽑아 놓고 출근하셨나 보다. 장딴지 처럼 굵고 실한 무는 아니고 그럭저럭 크기의 무다. 무보다 잎사귀가 하도 크고 싱싱해 잎사귀로 김치를 담그는 줄 알았는데 엄마는 동치미는 잎보다는 무를 많이 쓴다고 한다. 뿌연 국물에 갓과 고추 쪽파 가득한 시원한 동치미는 엄마의 주특기다. 동치미 국물에 흰쌀밥도 말아먹고 무만 송 송 채 쓸어 고춧가루, 마늘, 들기름을 넣고 무치면 도시락 반찬으로 동치미는 만능이다.

쌀쌀한 김장철 엄마는 융단 치마 안에 몸배 바지까지 단단히 차려 입고 쪼그려앉아 무를 다듬다가 다리가 저리다며 신던 슬리퍼를 깔고 철푸덕 앉아 다시 일을 한다.‘쓰악쓰악’ 무 긁을 때마다 풍기는 알싸한 무 냄새가 코끝을 시원하게 한다. 엄마를 돕고도 싶고 옆에서 놀고도 싶어 쪽파를 다듬겠다고 선수 치지만 사실 쪽파는 다듬기 싫어하는 일중에 하나다. 매운 것도 매운 것이지만 자잘한 쪽파 껍질이 자꾸 손끝에 붙어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고 대롱거리는 것이 여간 걸리적거리는 것이 아닌데다가 대파처럼 크면 쑥쑥 불어나는 재미라도 있지 크기가 작고 얇아서 아무리 까도까도 불어나지 않으니 재미도 없고 손톱 밑에 흙이 껴 쪽파를 다듬는 날이면 몇일은 손톱 밑에 새꺼먼 때가 빠지지않는다.

엄마는 후다닥 무 다듬기를 끝내고 쌩쌩하게 생긴 잎사귀 부분을 짚으로 엮는 중이다. 어지럽게 쌓였던 무 잎사귀가 가지런히 머리 따뜻이 모아진다. 겨우 내 찬바람이 드는 그늘에 말려 아빠가 좋아하는 시래깃국을 만든다고 한다.

“엄마 쓰레기를 아빠가 왜 먹어?” 알면서도 괜히 물어본다.

“쓰레기가 아니라 시래기, 시래기”

“이 많은 시래깃국을 아빠가 다 먹어”

“시래기는 국도 만들고 나물도 만들고 찌개도 만들지

니들도 잘 먹잖아 오늘 아침에 먹은 게 시래기야”

시래기 엮음이 다섯 줄이 나왔다. 바람이 많이 나고 그늘에 말려야 한다니 셋방 부엌으로 시래기를 옮겨야 하는데 보기에는 가벼워 보이지만 어깨에 메고 걸어도 휘청휘청 땅에 끌려서 들고 갈 수가 없다. 바람이 잘 드는 부엌 서까래에 무거운 시래기를 묶는다. 묵직한 시래기가 바람에 어렵싸리 치렁치렁 흔들릴 때마다 떨어질까 봐 천정을 다시 한번 살핀다.

수돗가에서 다듬어진 무와 쪽파를 씻으려고 엄마는 광에서 빨간 다라 두 개를 둘둘 굴려 내온다. 차가운 물에 무를 씻는 엄마의 손이 빨개지고 흐르는 물에 엄마의 버선도 젖는다. 춥다고 감기 걸린다고 들어가라는 엄마의 말에 연신 끄덕끄덕 대답 하지만 추운 날 차가운 물로 야채를 씻는 엄마가 감기에 걸릴 것 같아 냉큼 들어갈 생각이 안 난다. 물속에서 나온 무가 눈이 부시도록 하얗고 물기 뚝뚝 떨어지는 쪽파도 싱싱해 보이는 것이 빳빳하게 살아난다. 그만하면 괜찮을 법도 한데 엄마는 힘들지도 않은지 여러 번 헹군다. 찬바람이 쌩하고 불어 쪽파 몇 개가 바닥으로 떨어져 얼른 주워 담는다. 이렇게라도 엄마를 도와주려고 지켜보고 있다. 커다란 소쿠리에 야채가 산더미처럼 소복 소복이 쌓이고 엄마의 치맛자락은 젖어서 무겁게 축축 쳐진다.

저녁나절 수돗가에는 안 보이던 항아리가 나와 있고 수북하던 야채는 보이지 않는다. 벌써 동치미를 담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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