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간식은 아침나절에 시작하면 초저녁에 마무리될 정도로 푸짐스럽다. 어느 날 외출 후 엄마는 별로 크지 않았던 직사각형의 빵 만드는 기계를 달랑달랑 들고 왔다. 아이보리 색상으로 책정도의 크기에 한 뼘 정도 깊이가 있는 사각형 박스다. 뚜껑에는 빨간색 소방차 지붕 위에 붙은 전구 모양이 하나 붙어있고 나머지는 특별한 장치 없이 속이 텅 빈 장난감 플라스틱의 박스 모양으로 허접하다. 보기에 빵 기계라는 말을 안 한다면 종이인형이나 딱지 담는 통으로 딱이다.
첫날 빵 기계에 달려오는 설명서를 한참 읽고 나서 엄마는질죽한 밀가루 반죽에 베이킹파우더, 설탕, 바닐라향을 넣고 하얀색의 떡도 아니고 빵도 아닌 중간 정도의 어정쩡한 맛의 간식을 만들었다. 빨간불이 꺼지면 완성된다는 말에 지루하게 빵 기계 앞을 지켜 불이 꺼지자마자 설레는 마음으로 엄마를 부른다. 빵이 바닥에 붙어 나올 생각을 안 하자 엄마는 빵틀을 뒤집어 바닥으로 여러 번 흔들고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사각형 모양의 허연 빵이 서서히 나오는 가 싶더니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진다. 생전 부엌에서 맡아볼 수 없던 바닐라향이 빵과 함께 쏟아진다. 향기만으로는 최고일 것 같아 얼른 먹어봤지만 니 맛도 내 맛도 아니다. 빵 기계를 찬장 아래 서랍에서 꺼내는 날은 하루 종일 빵을 찍어내는 날이다. 밀가루, 베이킹파우더, 바닐라향, 흑설탕으로 시작해서 옥수수, 밤, 고구마, 콩과 건포도까지 넣고 켜켜이 흑설탕을 넣어 맛이 점점 좋아지는 가 싶더니 막걸리로 발효시켜 또 다른 향으로 미각을 자극하는 빵까지 만들었다.
허접한 빵 기계는 한동안 우리에게 다양한 맛을 보게 해 줬으며 보물단지처럼 애지중지 하다가 제과점 빵을 먹게 되면서 서서히 멀어졌다. 엄마가 만들어주는 따스한 빵은 제과점 빵처럼 맛있거나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만드는 동안 각자에게 일거리를 주고 펄펄 뛰는 기다림을 주었다. 심부름 다녀오고 반죽을 하고 빨간불이 켜지고 바닐라 향이 솔솔솔 집안을 채우던 빵은 그런 흔한 빵이 아니었다. 맛은 중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