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도넛

by 이강


엄마가 도넛을 만든 날 도넛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고 지금도 사방에 쌓인 그날의 도넛이 생생하게 생각난다.

부침개나 만두, 시루떡, 술떡, 미숫가루, 닭발은 자주 먹는 간식이지만 그날은 뭔가 향기도 다르고 색감도 종전에 쓰던 밀가루 색과는 다른 개나리 빛 반죽이다. 방바닥에 쟁반이며 소쿠리 심지어 달력까지 넓게 깔고 칼국수 밀대로 반죽을 밀어낸다. 평평해진 반죽을 늘어놓고 엄마는 찬장이나, 광을 들락날락거려가며 이것저것 원형 모양의 뚜껑을 찾아들고 반죽 위에 모양을 찍어본다. 주전자뚜껑, 꿀 항아리 뚜껑. 인삼주 뚜껑 몇 번을 반복하더니 작은 찻주전자 뚜껑이 당첨됐다. 찻 뚜껑으로 촘촘히 눌러 원형 모양을 뜨고 도넛 가운데 작은 구멍은 집안 상비약인 가스활명수 뚜껑으로 눌러 뚫다.


엄마는 반죽을 밀고 우리는 돌아가며 구멍을 뚫는데 처음에는 서로 한다고 밀치고 난리 치더니 나중에는 네가 몇 개 했네 내가 몇 개 했네 하면서 꽤를 부릴 정도로 지루했다. 엄마가 하는 부엌일이 보기에는 쉬워 보이는데 막상 하려면 힘들다. 원형 모양의 도넛 반죽이 처음에는 방바닥을 가득 채우는가 싶더니 문지방을 넘어 거실까지 채워간다. 아침 먹고 시작하던 도넛 반죽이 햇빛에 힘이 빠질 때쯤에서야 완성됐다.


본격적인 튀김 작업으로 곤로를 마당에 내다 놓고 튀김냄비가 올라간다. 언제다 먹으려고 사 왔는지 손 큰 엄마는 말 통으로 된 쇼트닝을 사다 놓고 국자로 하얀 쇼트닝을 뚝뚝 떼어 튀김냄비에‘탁탁’ 털어낸다. 쇼트닝 덩어리는 곤로에 불이 붙자마자 투명하게 변하면서 빙글빙글 돌다 물처럼 녹는다. 기름 냄비 속으로 기름이 튀지 않게 납작한 도넛을 하나씩 넣자마자 다섯 배나 넘게 부풀고 순간적으로 노르스름하게 색이 변한다. 마술쇼 보는 것처럼 신기했다. 기름기가 빠진 듯싶으면 설탕이 담긴 양푼에 쏟아 몇 번 둥글리면 설탕이 범벅이 된 진정한 도넛이 완성된다.


고소한 쇼트닝에 튀겨진 도넛 향이 소쿠리에 가득가득 쌓인다. 달달하고 폭신 거리는 따스한 도넛 속의 노란빛은 계란을 많이 넣어서 건강에도 좋고 맛이 좋은 것이라고 엄마는 자랑질을 하며 도넛을 반으로 쪼개가며 일일이 노란 빛깔을 보여준다. 어둑어둑 해질 때쯤 방안을 넘어 거실까지 가득했던 도넛이 다 튀겨졌다.


곤로 주변 엄마를 빙 돌아 도넛이 산더미처럼 쌓인 광경을 보니 세상에 바랄 것이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4. 계란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