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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 May 12. 2022

지하실

13. 지하실    

 

 장마철에 두 번 정도 크게 물난리가 나서 지하실에 물이 들어찼던 걸로 기억된다. 흙탕물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는 대문 앞에 얕게 깔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앞마당까지 차올라 좀 높다싶은 계단 뜰까지 넘실넘실 올라오고 있다. 장마 비가 굵은 소나기처럼 반나절 동안 내렸다. 잡초들이며 클로버 꽃들이 빗줄기 기세에 눌려 바닥으로 꺾이고 옆에서 동생이 하는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엄마와 아빠는 지하실로 통하는 환기구 구멍을 널빤지로 막아 보려고 이것저것을 찾아보지만 이미 물은 지하실 뚜껑위로 차오르다 폭포수처럼 지하실로 쏟아진다.  그 상황에 살짝 겁이 났지만 멋지기도 했다. 앞뜰을 향한 넓은 처마도 소용없이 빗줄기가 분무기처럼 물방울을 만들어 머리가 금방 축축해진다. 집안으로 들어가라는 다급한 엄마의 말에 구경하고 싶은 마음을 굴뚝같지만 더 이상 얼쩡거리다 불똥이 떨어질까 봐 창문으로 고개를 빼고 물 구경을 한다.

 발목까지 차오른 마당의 물을 보니 놀고 싶어 죽겠다. 드디어 우리 집 마당으로 개울이 생기는 구나 개울이 생기면 물고기도, 올갱이도 생기겠지 하는 기대감에 이왕이면 개울물에 자잘한 돌멩이가 많았으면 하고 동생과 손을 맞잡고 이방 저방을 방방 뛰며 신이 났다.

 그 많던 물이 저녁나절이 되니 슬슬 빠지는 듯 가늘어지더니  얇게 진흙만 깔렸다. 하루도 안 되서 이렇게 없어져 버리니 얼마나 아쉬웠는지 엄마는 진흙을 쓸어 내며 지하실에 물이 차서 내일은 온 가족이 물을 퍼내야한다고 한다.
  지하실에서 물을 퍼내는 날이다. 눈을 뜨자마자 지하실이 궁금해서 후다닥 달려 나가니 대야며 다라, 들통, 양동이 집안에 통이라는 통은 모두 지하실 옆에 모여 놨다. 세 계단정도 내려가니 물이 보인다. 누전이 되서 지하실 불은 나갔지만 낮이라서 훤히 보이는 지하실 속에는 물이 어른 허리쯤까지 찼다. 슬리퍼, 화분, 비누 각, 줄넘기며 나뭇가지와 풀뿌리도 둥실둥실 흔들리는 것이  다른 세상이다. 지하실은 간간이 오빠가 운동하는 아령이나 역기만 있을 뿐  훵하니 깨끗했는데  흙탕물도 아니고 히뿌연한 물이 출렁출렁  물놀이 공원에라도 놀러온 듯 흥분된다. 

 물놀이할 생각에 몸에 물을 적시려고 준비 자세를 취하자  똥물에서 뭔짓하냐고 우렁우렁 울리는 지하실 목소리로 엄마가 고함친다.  

작은 조각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이 빠지기 전에 타보고 싶고 물이 이대로 계속 있다면 아니 몇 일 만이라도 더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수영도하고 튜브도 타고 물고기도 기르고 우선 커다란 종이배를 만들어 그거라도 타고 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을 이대로 두고 싶지만 엄마 아빠는 계단 쪽에서 물 퍼내기에 바쁘다. 나란히 줄을 서서 물을 전달하라고 위치를 정해 준다. 힘이 좋은 오빠와 아빠는 계단에 서서 물을 나르는데 쉬운 것 같으면서도 장난이 아니다. 배가 고파 밖으로 나오니 발가락이며 손가락이 둥둥 불어  쭈글거리고 하얀색으로 변해있다.  아침을 먹고 온 가족이 한바탕 더 퍼냈다. 아빠는
 “그래도 니들이 도와주니 빨리 끝나고 쉽네”
 하며 웃는다. 어리다고 맨날 니들은 몰라도 된다고 하더니만 오늘은 웬일인지  도움이 됐다는 말에 기분이 으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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