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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 May 10. 2022

노래기

 
 12. 노래기     

 그해는 아무리 생각해도 미스테리다. 다리 많은 벌레라면 딱 질색인데 한 두 마리만 간신이 보이던 노래기가 하루가 멀다고 몇 배로 늘어난다. 다리 많고 느리적 느리적 걸어 다니는 느낌도 징그러운데 색깔까지 짙은 붉은빛이다. 지네를 닮은 듯 돈벌레를 닮은 듯 싫어하는 벌레만 골고루 닮은 벌레가 다른 곳도 아닌 우리 집에 자고 일어나면 여기저기 무더기로 생긴다. 움직일 때마다 여러 개의 다리가 스르르 스르르 세상 징그럽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아빠는 벌레 죽이는 약을 사와 물과 희석해서 푸막기로 축축한 담벼락에 집중적으로 뿌린다. 커다란 통을 등에 매달고 왼쪽 손으로는 손잡를 위아래로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약을 뿌려댄다. 그늘지고 축축한 벽에 더덕더덕 붙어있는 노래기에게 약을 뿌릴수록 윤기만 반짝거린다. 아빠가 약을 줘봐야 몇 마리만 돌돌 말려 떨어질 뿐 꿈쩍 않고 붙어있다. 떨어진 노래기도 그대로 두면 다음날 어디로 갔는지  도망가고 없어진다. 약이 약한 것인지 단단한 노래기 등껍질 때문인지 사 온 약 두통을 몇 일 간격으로 뿌려봐야 죽은 노래기는 고작 몇 마리뿐 차라리 밝아 죽이는 양이 더 많다. 

이번에는 가스불이 활활 나오는 토치를 사용해  불질하고 다닌다. 그것도 한계가 있다. 집 전체에 퍼진 노래기 숫자에 비해 턱없이 작은 토치 불은 장난감이다.

 수업 끝나고 오는 길에  우리 집 옥상난간을 보고 움찔했다. 우리 집이라고 말하기도 창피스러울 정도로 흉물스럽다. 노래기가 얼마나 붙었는지 하늘색 페인트가 검은빛으로 얼룩거려 보이는 것이 곰팡이 생긴 집처럼 끔찍해 보였다.

 엄마와 아빠는 대빗자루로 담이며 벽에 붙은 노래기를 쓸어 모아 불을 지른다. 노래기를 볼 때마다 발로 짓눌러 죽이는데 그때마다 노래기 몸에서 연기라도 나오는지   쏴하게 올라오는 것이 쓴 내가 날 정도로 역겹다. 하루하루 온 가족이 하는 일은 빗자루로 토치로 약으로 각자 하나씩 맡아서 노래기를 박멸하는 일이다. 집 뒤가 논이라 축축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원인을 찾으려 했지만 논은 집을 지을 때부터 있었던 것이고 바로 붙어있는 옆집은 노래기를 한 두 마리 찾기도 힘들다. 여섯 채의 집이 조르르 붙어있는데  유일하게 우리 집에만 노래기 전쟁이다. 

방에 한두 마리씩 기어 다니는 노래기는 밖에서 보는 노래기보다 몇 배로 소름 끼친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이불속에서 느릿느릿 나오는 노래기를 보면 이불속에서 같이 자고 나오는 것은 아닌지 소름끼쳐 비명을 지른다.

 엄마는 어디서 듣고 온 것인지 노래기가 페인트 냄새를 싫어한다고 페인트를 칠하는데 페인트와 노래기가 뒤범벅이 돼서 칠해졌지만 소용없다. 방금 페인트 칠한 곳으로 천연덕스럽게 기어 다니는 노래기는 천하무적이다. 아침마다 아빠는 마당을 쓰는 것이 아니라 노래기를 쓸어 태운다.

 날이 갈수록 무뎌지는 것인지 가족들의 예민함이 사라질 때 쯤 노래기도 서서히 사라졌다. 찬바람 때문인지 한두 마리만 간신히 보이더니 더 이상은 안 보인다. 

  그해만 노래기 전쟁이었고 다음해부터는 노래기가 보이지 않아서 천만다행인데 엄마는 노래기 때문에 큰일을 피해 갔다고 오히려 노래기가 액땜을 해줬다며 편을 든다. 온 가족이 매일 모여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느라 크게 생길 나쁜 일을 피해 액땜을 했다고 하는데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것 같기도 했다. 그해에 몇 달 동안 가족이 오로지 한마음으로 자나 깨나 노래기 퇴치를 위해 상의하고 서로 돕고 같이 움직인 것은 사실이다. 아빠는 술도 덜 마시고 일찍 들어와 집안을 살피고 엄마도 아줌마들과 외출을 삼가하고 우리도 놀이라 생각해 한편으로는 징그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엄마아빠와 같이 한다는 것이 신이 나기도 했다. 온 가족이  무엇인가를 상의하고 집안일을 돕는다는 것은 아무리 힘든 일이었다 해도 뒤돌아보면 힘든 일만은 아니고  배우는 것도 많았으며  할 일이 무엇인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찾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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