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강 May 07. 2022

향나무


 11. 향나무     

   향기가 난다고 해서 향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향기라고 말하면 대부분 꽃향기를 생각하는데 향나무에서 나는 향기는  진한 녹색향이라고 생각하면 딱 맞는다. 향기를 확인하고 싶으면 향나무 잎사귀를 조금 꺾어 손가락으로 비벼 콧구멍에 들이대고 맡아보면 금방 이해가 간다. 성정동 집 정원에 있는 나무 중 절반이  멋진 모양을 뽐내는 향나무며 하나같이 아빠가 구상한 작품이지 그냥 자연스러운 모양은 하나도 없다. 향나무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면 중구난방 미친년 대가리 같다. 

한가한 주말 향나무 다듬는 날에는 한여름에도 긴남방과 두툼한 바지를 입어야 한다. 아빠는 향나무 가시가 억세고 따가우며 가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선 향나무를 다듬기 위해 크고 팔뚝만한 긴 가위로 쓱싹쓱싹 전체적인 형태를 대충 잡아주고 작은 손가위로  디테일한 부분을 잡아준다. 20분만 향나무를 잘라내면 나무 특유의 녹색향이 마당으로 가득 찬다. 향나무 향은 고급스럽다. 햇볕 내리쬐는 여름 높은 사다리 위에서  비 오듯 땀이 흐르는 아빠 등 뒤로 남방이  찰싹 붙어 있고 수건으로는 연신 눈 위로 흐르는 땀을 닦는다.            하던 일을 멈추고 심각하게 나무를 바라보며

 “이 나무는 어떤 모양을 할까?”

묻는 아빠의 말에 우리 남매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 중에서
 “아이스크림 , 꽈배기, 뭉게구름, 인어공주”
 하며 생각나는 대로 지껄인다. 말하면 다 이루어질 것만 같고 아빠의 표정으로만 봐서는 뚝딱 뚝딱 쉽게 만들어 줄 것만 같았다. 사다리 위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심 고심하다가 무슨 영감이 떠올랐는지 전지가위가 나무 위를 미끌어가 듯  ‘쌀뚝 쌀뚝’  잘라낸다. 우리는 마당을 이리저리 뛰어놀다 아이스크림이나 꽈배기, 뭉게구름, 인어공주가 언제 나오려나 중간 중간 향나무를 확인한다. 향나무 아래로 잘려진 나뭇가지가 수북수북 쌓이고 시간이 지나도 무슨 모양인지 분간이 안가도 아빠는 해가 저물어 앞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사다리 위에서 내려올 생각을 안한다. 
   다음날 아침 마당에서 동생과 오빠를 부르며 이 나무 저 나무를  뛰어다닌다. 대충 비슷하게 꽈배기, 도넛, 달팽이, 뭉게구름  향나무는 아빠가 주는 선물이다. 

그중에 최고의 작품은 안방 창문 앞에 있는 구름 향나무다. 크기도 크지만 나이도 많이 먹어 자태가 예사롭지 않고 공원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누워있는 향나무다. 45도 각도로 기울어져 작은 옥상까지 7미터 정도 뻗은 형태로 동글동글 큰 구름에서 작은 구름까지 일곱 개의 모양이 이어졌다. 구름 징검다리라고 할까? 가벼운 몸이라면 사뿐사뿐 밝고 계단처럼 올라가고 싶다. 우리 집에 처음 오는 분들은 현관문에 들어가기 전에 구름 향나무 앞에 서서 이렇게 크고 멋진 나무가 집에 있을 수가 있냐며 기가 막힌다고 감탄의 찬사를 한마디씩 하곤 한다.                                                                                                                                     아빠의 자부심인 누워있는 향나무는 항상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 아빠가 바빠서 다른 향나무를 돌볼 시간이 없어 엉망인 상태에도 이 나무는 사계절 내내 단정한 모양을 하고 있다. 심지어 나무 가지 속에 언제든지 사용 할 수 있는 전지가위와 장갑이 박혀있다. 눈이 많이 와서 다른 나무가 꺾이고 가지가 휘어도 이 나무 위에는 눈 쌓이는 꼴을 못 봤다. 출근길에  눈부터 치우고 퇴근길에 이 나무부터 한 바퀴 둘러보며 나무 사이사이에 죽은 가지들이라도 훌훌 털어주고 들어온다. 한약이라도 다리는 날이면 한약 찌꺼기는 고스란히 구름 향나무 아래로 묻어진다. 아빠의 정성을 듬푹 받는 향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 굵고 잎이  빡빡하고 단단해 구름 덩어리 모양을 발로 밟아도 빠지지 않을 것 처럼 촘촘하다. 공원에서도 보기 힘든 멋진 자태의 향나무는 우리 집에 자랑이며 아빠의 얼굴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과나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