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강 May 07. 2022

모과나무

10. 모과나무     

 

길을 가다가 유난이 잘 다듬어진 정원의 나무를 보면 성정동 집이 생각난다. 집 옆으로 상가를 짓기 전까지 한때는 꽤 넓은 정원이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나무가 많은 성정동 집은 가을이면 동네사람들에게 나눠줘도 남을 만큼 다닥다닥 모과가 열렸다. 수돗가 옆에 나란히 두 그루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다른 것 보다 두 세배 정도 굵고 키도 커서 옥상 위에 올라가  나뭇가지를 만지작거릴 수 있었다. 엄마는 큰 나무가 수컷이고 작은 나무는 암컷이라고 했다. 수돗가 가까이에 있던 수컷나무는 키가 크고 힘이 좋아서 빨랫줄을 메어 쓰고 여기저기 삐쭉거리며 튀어나온 가지에는 운동화며 마포걸레, 사골냄비를 걸어 말렸다. 그래서일까 모과나무 아랫부분에는 항상 바싹 말라 비틀어진 잡다한 살림살이들이 사계절 내내 매달려있다. 

여름에는 잎사귀가 많아 하늘도 보이지 않도록 그늘이 짙다. 봄에서 여름까지 식구들조차도 현관문 옆에 버티고 있는 것이 모과나무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다. 가을로 간다 해도 잎사귀 옆에 바싹 붙어 있으면  모과인지 잎사귀인지 감쪽같다. 늦가을 잎사귀가 거의 떨어지면 그제 서야 모과들이 보이는데 보기만 해도 찐덕거리는 노오란 덩어리들이 어디에 숨어있다 나왔는지 대추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어 놀랄 지경이다. 

지붕위로 달박거리는 노오란 모과를 보고 지나가던 낯선 사람들이 문을 두드린다. 어린나이에 먹지도 못하는 많은 모과가 얄밉기도 했지만 몇 개만 달라고 부탁하러 오는 어른들 앞에서면 괜히 으쓱하는 기분이 들곤 했다.

바람이 분다. 멀리서 바람방향이 바뀔 때 훅하고 코 끝에 스치는 달달한 모과 향은 고개를 들고 하늘 높이 매달린 노란빛을 보게 만든다. 온 동네가 은은하게 모과향기가 퍼질 때쯤이면 모과나무 주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모과 향을 좋아하는 엄마는 장롱이나 다락, 거실, 신발장등 놀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수북하게 모과를 바구니에 담아 놓고 마당에도 동네 분들이 가져가고 남은 모과가 수북하다. 시커멓게 변해서 주저앉을 때까지 가을이면 온 집 안에 달달한 모과향이 가득했고 잠을 자려고 누우면 이불속에서 모과향이 풀풀 난다. 잠들기 전 이불속에서 나는 모과향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는 사람은 모를 것이다. 이불장 속에 양파망이나 올 나간 스타킹에 메달아 놓은 모과향이 이불에 밴 것이다. 

그때쯤이면 동네 집집마다 모과향이 가득했고 모과향이 날리는 성정동 집의 다닥다닥한 모과가 동네 분위기를 한껏 살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목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