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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 May 03. 2022

목련

8. 목련     

  얼굴 주변을 맴도는 엷은 입김과 주머니 속으로 파고드는 손가락은 개학하자마자 가장 먼저 느끼는 등교 길의 추위다. 차가운 초봄에 잠시 스쳐가는 꽃샘추위는 이름과는 다르게 다혈질에 지랄 맞은 고약함이다. 세찬 바람에 눈과 진눈깨비가 동시에 오다가 잠시 햇살이 비추는가 싶더니 추적추적 비까지 내린다. 아침에 딱딱하게 얼던 땅이 점심이면 비라도 온 듯 질퍽거려 바지 뒷부분에 진흙 덩어리가 쩍쩍 붙어 집에 들어오면 신발 벗기 전에 걸레부터 찾아 떼어내는 것도 일이다. 그런가하면 아침햇살에 속아 얇은 봄옷을 입고 등교해서 하루 종일 덜덜 떨며 얼어 죽을 뻔 한 날도 대부분이 꽃샘추위다.
  초등 5학년 때쯤의 일이다. 

그날은 웬 변덕으로 모처럼 만에 햇살의 농도가 짙어 어제와는 다르게 아침인데도 점심 같은 푸근함에 괜한 기대감을 주는 날이었다. 등교 길 대문턱을 넘어가던 순간 매일 드나들던 똑같은 곳인데도 어제와는 다른 느낌이 든다. 없던 자리에 뭔가 알쏭달쏭한 것이 추가된 기분이랄까. 아니면 어제까지 칙칙하던 담벼락을 누군가가 말끔한 페인트로 정리한 느낌. 그냥 지나가려다  이끌리듯 뒤를 쓱 돌아봤는데 뒷부분이 하얀 물감이라도 쏟아 부은 듯 눈부신 환한 빛이 돌아  올려다본다. 

 목련꽃이 만발했다.
 언제부터 저렇게 많은 꽃이 피었지! 변덕스러운 꽃샘추위 때문에 봄이 가까이 온 줄 몰랐다. 햇살만 추가됐지 겨울처럼 파리한 하늘에 두 손 바닥 만한 목련이 마당 한 켠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하얀 꽃잎 사이로 햇빛이 반짝이며 아직은 초록 잎도 보기 힘든 추위인데 꽃부터 넘치게 피었다. 활짝 핀 꽃을 세어본다. 반 쯤 핀 꽃을 세어본다. 꽃잎 사이로 숨어있는 셀 수 없는 많은 꽃봉오리에  든든해지고 혼자 보기 아까운 꽃을 두고 가자니 없어질 것도 아닌데 괜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달려와서 마저 못 보던 꽃을 하나하나 확인해야겠다. 꽉 차게 꽃이 피는 날 까지 하루에 몇 번씩 바라봐야지 다짐하며 학교 길을 나선다. 그날은 숨겨둔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안 웃었는데도 웃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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