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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 May 01. 2022

욕실

 

세수하기 화장실가기는 귀찮은 일중에 하나다. 

겨울이면 방문 여는 것도 귀찮은데 현관문을 열고 찬바람 쌩쌩 부는 밖으로 나가야하니 죽기보다 싫다. 세수만이라도 겨울동안은 안하고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꽁꽁 얼고 미끄러운 마당을 가로 질러 욕실로 가다가 고드름이 녹아떨어진 자리라도  밟으면 그대로 미끄러지니 바닥을 챙겨가며 걷는 것 또한 징그럽게 귀찮다. 목욕탕 선반위에 엉키고 들쑥날쑥한 칫솔을 뒤적거려가며 찾아 이빨은 닦는다. 얼굴은 손가락으로 툭툭 물만 찍어 바를 것을 왜 매일 닦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엄마가 들통에 물을 데워 아침마다 욕실에 한 들통의 물을 내다 주지만 늘쩡거리면 그것마저 국물도 없다. 더운물에 경쟁이 붙어 부지런 떨지만 어쩌다 꼴찌로 나가보면  물은 다 식고 손톱 끝만 잠길 물이 겨우 남아 고양이 세수는 고사하고 이빨 닦는 흉내만 간신히 하게 돼서  치약이 아까울 정도다.

 겨울에 집에서 머리를 감는 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들고 일주일에 한번 동네 목욕탕이나 가면 일주일동안 버틸 만큼 머리를 감고도 나오기 전에 엄마가 다시 한 번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감아 머릿속이 얼얼해서야 집에 온다 .

한파가 몰아치면 욕실 수도꼭지를 아무리 이불이나 헌옷으로 싸맨다 해도 얼어버린다. 속으로는 얼씨구나 몇 일 동안 세수를 안 해도 되는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개다리 춤을 추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이를 닦아야한다는 엄마의 말에 칫솔만 들고 현관문 앞에 서서 칫솔질하며 문 앞에 쌓인 눈을 슬리퍼로 꾹꾹 눌러본다. 신발자국이 쵸코렡 모양으로 나온다. 눈에 찍힌 발자국이 모두 쵸코렡이면 얼마나 좋을까! 발자국 만들기에 정신 팔려 칫솔만 물고 이곳저곳에 발도장을 찍느라 앞마당 전체에 쵸코렡 밭을 만든다. 이런 날은 이 닦는 것도 그럭저럭 재밌다. 

 담장에 눈이 이십 센티는 넘게 쌓여있다. 하늘이나 눈이나 같은 색을 띄고 있는 날은 눈이 하늘 속에 꽉 들어차서 하루 종일 눈이 올 것이라고 할머니가 말했던 감동적인 말이 기억난다. 

밤새 눈이 내려서 더 이상 올 것이 없는지 눈이 오다말다 오다말다 한다. 장딴지 중간 넘게까지 쌓인 눈을 밀어가며 걸어야 진정한 겨울의 맛인데 오늘이 그날이다. 갑자기 빨간 부츠를 신고 빨리 나가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빨 헹군 물을 크게 품어낸다. 이대로 겨우내 목욕탕 수도꼭지가 언다면 아침마다 지겨운 이 닦는 시간을 낭만적으로 보낼 것만 같다.  제발


#이강 #이강작가#감성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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