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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 Apr 30. 2022

이끼

6. 이끼     

성정동 집 뒤 곁은 혼자만의 비밀 장소다.

 비밀장소라기 보다 어울리는 말이 있다면 마음이 편안해지거나 몇 시간이고 그 누구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 공간이랄까. 그 당시 집 뒤 곁은 집과 담장사이의 유지해야 할 최대의 공간 외에 아무것도 없는 길쭉한 땅바닥뿐이다. 담장 밖으로 논이 있을 뿐 특별한 것이 없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고 가봐야 아무것도 없다. 뒤 곁을 가려면 현관문을 열고 오른쪽 모퉁이를 돌아 좁은 골목을 지나  곰국을 끓일 때 사용하는 커다란 솥이며 빨간 다라를 넣어두는 광을 지나야 한다. 광을 통과하려면 여기저기 바닥에 널려있는 항아리며 광주리나 곡식자루를 발로 쓱쓱 밀어가며 가다가  끝부분에 왔다 싶으면 이가 맞지 않는 문을 힘주어 열어야 뒤 곁이 나온다. 
 두 평 조차 안 되는 그곳은 온통 도톰한 이끼로 가득하다. 

아무도 밟지 않아 구겨지지 않은 소복한 이끼는 키 작은 풀처럼 촘촘하게 박혀있는 이국적인 들판을 연상케 했다. 그늘진 그곳은 풀 한포기 없이 이끼만 가득해 한여름에도 골짜기처럼 시원해서  오랜 시간 앉아있기에   최적의 장소였고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최상의 공간이었다. 통통하고 두꺼운 이끼는 여기저기 작은 구릉을 이루고 있다. 좀 더 가까이 보고 싶은 마음에 엉덩이를 쳐들고 이끼를 관찰하면 불가사리 모양의 빛바랜 우산 아래로는 뽀족한 진녹색 풀 모양이 빡빡하게 자리를 깔고 있으며 솜털 가득한 도톰한 이끼는 강아지 엉덩이처럼 통통했다. 이끼를 칭찬하듯이 아기를 재우듯이 토닥토닥 거리며 쓰다듬어 봐도 눌리는 이끼 하나 없이 빡빡하다. 

가끔 동생이나 오빠를 데려오지만 시큰둥한 표정으로 이게 뭐야 하며 그냥 나가버렸다. 맙소사 집 뒤에 별천지가 있는데도 알아보지 못하고 무시하다니 한편으로는 다행이고 한편으로는 답답하다. 


#이강#이강작가#감성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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