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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 Apr 29. 2022

살구나무

7. 살구나무     

오렌지핑크빛은 일 년 내내  애타게 기다리던 군침 도는 과즙 빛깔이다. 

작은놈이나 큰놈이나 하나같이 젤리처럼 달고 어찌나 부드러운지 돈 안내고 배 부르도록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간식으로 우리 집에는  살구가 있다. 오렌지 핑크빛으로 물들어가는 달박달박한 살구나무 아래에서 하루에 몇 번은 얼마나 익었는지 얼마나 말랑말랑한지 만져본다. 연두 빛이 많이 돌던 살구를 올려다보며 기대감으로 입안에 벌써부터 침이 고이고 기다리다 지쳐  익지도 않은 살구를 입에 넣어  보지만 아직은 이른지 시다 못해 혀가 아리다. 

몇 일만 기다리면 먹을 수 있는 우리 집 살구는 단언컨대 시장에서 사오는 그 어떤 과일보다 몇 배는 예쁘고 맛있다. 단풍에 물들 듯 한꺼번에 오렌지 핑크빛이 되면 살구는 욕심내고 눈치 없이 먹어도 표시가 안 날만큼 많이도 열린다. 화장실에 오가며 손에 닿는 대로 쓱쓱 문질러 입에 밀어 넣으며 설마 설마 하는 마음에 못생기고 오므라든 살구건 작고 비틀어진 살구건 손에 잡히는 대로 먹는다해도 어쨋거나 죄다 감탄스러운 맛이다. 엄마는 살구가 열리는 시기에 은근히 기다리는 동네 사람들에게 한 바가지씩 돌리면 살구나무는 우리 남매보다 더한 칭찬을 듣는다. 막내동생의  통통한 손으로 반을 갈라도 어렵지 않게 갈라져 씨가 쑥 빠져 바닥으로 굴러 떨어진다. 씨가 붙었던 자리는 씨앗의 얼굴이라도 세긴 것처럼 발그레 붉은 빛이 돈다. 먹기 좋게 씨까지 또 옥 떨어지는 살구를 고르면 재수 좋은 날이다. 시큼한 맛은 하나도 없이 옹골진 단맛!  

지금도 독한 감기로 고생한 끝 무렵이면 단맛이 깊었던  성정동 집 살구가 그립다.


#이강#이강작가 #살구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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