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강 Apr 28. 2022

은행나무

5. 은행나무     

화장실과 가까운 곳에는 언제 심었는지 모르는 은행나무가 있다. 

나무의 이름을 알기 시작하고 관심이 가기 시작할 때 쯤 은행나무는 우리 집에서 가장 균형 잡흰 기본형을 갖추고 있는 나무라는 것을 알았다. 화장실과 가깝다는 이유로 하루에 몇 번은 은행나무를 지나치지만 그냥 지나치기만 할뿐 은행나무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계절이 다가도록 모른다. 특히 은행나무는 키가 커서 어렸을 때의 시선에는 두툼한 나무둥치만 보일 뿐 일부러 고개를 쳐들지 않는 한 잎새가 달린 나무라는 것 조차 모르고 하루에도 몇 번씩 오고가곤 한다.
  시간이 지나 가을이면 무뚝뚝하던 은행나무가 이상한 짓을 한다.

 화장실과 작은 옥상, 담장 밖까지 온통 낭만적인 노란빛을 털어낸다. 하나둘씩 시작하다가 갑자기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노란빛으로 집 전체를 감싸고 돈다. 마당을 쓸어도 쓸어도 언제 쓸었냐는 듯이 금방 노란색으로 덮어버리고 대문 안으로 들어오면 마당 전체가 노란색이다. 해마다 은행나무는 기세가 등등해진다. 바람이라도 불어 은행잎이 한번에 여러 개가 떨어지는 날이면 좋아서 날뛰는 강아지처럼 주변을 빙빙 돌며 뛰어다니고 이른 아침이면 밤새 떨어진 완벽한 노란빛을 먼저 보려고 눈을 뜨자마자 은행나무 쪽으로 달려간다. 어제보다 더 넓게 진하게 떨어진 은행잎은  향나무 , 단풍나무, 살구나무까지 노랗게 덮어버린다. 살랑거리는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빙글 빙글거리며 곡선을 따라 떨어지는 잎사귀 가운데 서서 하늘을 바라본다. 낭만적인 일이다. 은행잎은 같이 놀아주는 친구다. 

가을이 깊어질 때까지 우리 집 마당은 노란색으로 물들고 악을 쓰던 엄마도 은행잎이 가득한 몇 주일은
 “아 예쁘다. 어쩜 이렇게도 노랗다냐”
 하며 한결 부드러워지고 아침마다 마당을 쓸던 아빠도 마당 쓸기를 그만두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은행나무 앞에서 한참을 머물다 가곤 한다.



#이강 #이강작가 #은행나무 #감성에세이

매거진의 이전글 엄나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