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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 Apr 27. 2022

엄나무

4. 엄나무     

 아직은 쌀쌀한 봄기운이 있는 날 퇴근 후 돌아오신 아빠는  뻣뻣한 닭 사료 종이에 무언가를 둘둘 말아 오셨다. 그것은 귀하고 귀하다고 구해온 몸에 좋은 엄나무라 한다. 아빠가 가져오는 거라면 무엇이든 관심도 없는 엄마가 이번 엄나무를 심을 때에는 좋은 자리를 찾아 분주히 정원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왠지 귀한나무처럼 애지중지하던 생각이 난다. 엄나무는 양지바르고 사람 손이 많이 타지 않는 화장실 쪽 은행나무 옆에 나란히 심어졌다. 

몇 년이 지났는지 존재감이 없던  엄나무가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작은 회초리 가시나무를 심은 자리에 어느새 제대로 형태를 갖춘 두툼한 나무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화장실 근처라서 땅이 기름졌나 사람 손이 안 타서 그랬나 그때부터 엄나무 주변을 서성거리며 살펴봤다. 

엄나무라는 이름도 나무에는 어울리지 않는 묘한 느낌으로 ‘엄’이라는 첫 글자는 사람에게 붙이는 성과 비슷해서 고급스러운 냄새가 났고 이상하게 나무의 외형도 동화 속에나 어울리는 특별한 외모를 지녔다. 다른 나무와는 다르게 나무색이 은빛 회색의 줄기도 신기한데 온통 가시가 박혀있고 빡빡하게 박힌 가시는 크고 작고 날카롭고 위협적이어서 삼국지에나 나오는 덩치 큰 장수의 오른손에든 쇠뭉치처럼 보인다. 가시 때문에 멋지기도 하지만 안 어울릴 듯 어울리는 듬성거리는 잎 새는 나무를 더욱 신비롭게 한다. 사나운 나무에 커다란 손바닥 모양을 하고 있는 잎 새를 올려다보며 나무에서 귀티가 흐른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겨울이면 유독 엄나무에게만 옷을 입히듯 어디서 구해왔는지 정성스레 여러 겹의 짚으로 나무 중간 부분을 촘촘히 싸주는데 그것만 봐도 확실히 귀하긴 귀한나무인가 보다.

 아끼던 엄나무를 어느 여름날 마당 구석 빨래를 삶거나 사골을 끊일 때 사용하는 야외용 화덕 커다란 냄비 속에서 보았다. 여러 마리의 삼계 닭 속에 은빛 회색 신비롭던 엄나무는 볼품없는 검으퇴퇴한 색으로 변했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가시를 곤두세운 체 부글거리는 국물 속에서 오르락내리락 거리고 있었다. 사나운 동물이 이빨을 으르렁 거리며 가만히 안두겠다는 몸부림 처럼 보였다. 너무 놀라 엄나무가 있는 화장실 쪽으로 달려갔다. 동화 속에서 나오는 귀티 나는 엄나무가 없어졌을까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는데 다행히 나무는 변한 곳 없이 태연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어느 곳이 잘렸는지 알 수 없게 멀쩡해 보였다. 엄나무를 넣은 삼계탕은 별다른 맛이 없이 그냥 삼계탕 맛이다. 엄마 아빠는 엄나무 삼계탕은 고기가 부드럽고 특별하게 맛있다고 국물 한 방울도 남김없이 건강을 생각해서 들이 마신다. 몸에 좋은 엄나무 삼계탕은 그 후도 해마다 여름이면 손님이 오거나 초복, 중복, 말복 이거나 기력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여러 번 끊여졌지만 변함없이 신비로운 자태는 여전했다.


#이강#이강작가#엄나무#감성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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