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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 Apr 26. 2022

호로새

엄마는 냄새와 털, 똥 때문에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 아빠는 양, 호로새, 토끼, 칠면조, 닭, 개, 고양이, 거위, 오리를 꾸준히 얻어 온다. 동물을 얻어 오는 날에는 엄마의 잔소리가 하루 종일 이어지고 아빠는 피해 다니느라 마당 구석이나 옥상을 서성인다. 가족과 상의 없이 아무런 대책 없이 불쑥 한 쌍의 동물을 상자에 담아 오고는 다음날 서둘러 하루 종일 못과 망치로 굴러다니는 사과 상자나 철판 조각을 이어 대충  동물 집을 만드는 모습도 엄마가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다. 양 집, 토기장, 닭장은 누가 봐도 그날그날 생각나는 대로 망치질한 아빠의 작품으로 하루 만에 날림으로 지어진다.


  기억에 남는 동물은 호로새다. 

이름도 오묘한 느낌이지만 생긴 모습도 이국적이며 귀족적인 자태가 동물원에서만 볼 수 있는 값비싼 외모였다. 크기는 닭보다 크고 칠면조 보다는 작으며 흰빛이 살짝 감도는 연회색 깃털에 하얀 점이 동글동글 박흰 것이 매력적이며 부드러운 실크스카프 처럼 겹겹이 쌓여진 오묘하게 고급스러운 회색을 바라보고 있으면 깊이 빠져들어 깃털이라기보다는 천으로 옷감을 두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휘 집어 보고 싶을 정도다. 닭이나 칠면조처럼 깃털이 재대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른거려 호로새로 드레스라도 만들어 입으면 세상에서 제일가는 드레스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몸집에 비해 작은 얼굴에는 뾰족하기도 하고 말랑거리는 벼슬이 적당한 크기로 붙어 있는데  특히 벼슬 부분이 호로새의 포인트다. 그 부분만 유난히 형광 빛 애머랄드 그린 색을 크레파스가 부러지도록 더덕더덕 두껍게 눌러 바른 느낌이다. 일상에서 보기 드문 형광 빛 애머랄드 그린색이 살아 움직이는 동물 정수리 부분에 발라져 있는 것도 신기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으로 딱 그 부분에 있어야 할 색상이 제대로 자리 잡은 것이 기가 막힌다. 

호로새는 멋지다. 

칠면조처럼 승질에 못 이겨 괴상망칙한 목소리로 사람을 노려보며 소리치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혼자 중얼거리듯 들릴까 말까하는 소리가 전부다. 사료를 주러 새장 속으로 들어가면 칠면조처럼 날개를 양옆으로 젖히고 벼슬을 빳빳이 세워가며 위협적으로 덤비는 법이 없이 그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한쪽 눈으로 유심히 바라보고 천천히 걸을까 말까 한쪽 발을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망설이는 모습이 사람을 배려하는 듯하다. 가끔은 관심이 있는 듯 아닌 듯하는 것이 사람을 애태우기까지 한다. 

닭이나 칠면조는 알을 먹든지 잡아 먹든지 살림에 보탬이 되는데 호로새는 오로지 관상용이라 도움이 안 되고 똥만 싼다고 엄마는 불만이지만 호로새를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의 찬사에 기분이 좋은지 은근 부드러운 야채나 과일껍질은 호로새부터 챙겨준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기만의 특별함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아야 사랑받나 보다.


#이강 #이강작가 # 감성에세이 #호로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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