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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 Apr 24. 2022

고양이

고양이     

 가끔 오면 몇 달은 머물다 가는 외할머니가 오랜만에 오셨다. 올 때마다 커다란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손에 들고 들기름, 마른나물, 깐 마늘, 고춧가루, 참깨, 애호박, 다양한 사탕이 꼭꼭 싸맨 보따리에 가득하다. 

그날은 특별하게 보따리 속에 고양이도 있었다. 

집 천장에서 쥐가 왔다 갔다 하는 소리를 듣고 고양이를 생각하셨나보다. 밤이면 밤마다 천장에서 얼마나 쥐들이 왔다 갔다 하는지 떼로 몰려다니며 지들끼리 싸우고 뒹굴고 해서 자다가 우산으로 천정을 몇 번 때려줘야 조용해지지만 우산 때문에 천정에 구멍까지 났다. 어떻게 보따리에 고양이를 싸올 생각을 했는지 보따리를 풀자마자 누런 인절미 같은  고양이가 나온다. 아기 고양이도 아니고 어른 고양이도 아닌 중간 크기의 고양이다. 예쁜 마음에 얼른 안아주려고 다가가니 나오자마자 ‘학학’ ‘키야오오옹 갸오옹’ 귀가 뒤로 제쳐지더니 눈이며 얼굴까지  밀려갈 정도로 인상을 쓴다. 게다가 살짝 옆으로 휘어진 등으로 꼬리까지 채찍처럼 휘두르고 있는 자세가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하는데 좋아하던 마음이 싹 사라진다.  저렇게 지랄 맞은 고양이를 처음 본다. 할머니한테도 마찬가지다. 할머니가 한손을 내밀며 달래듯‘아나구이 아나구이’ 고양이 이름을 백번을 불러봐야 소용없다. 지친 할머니도 자존심이 상했는지 재빠르게 고양이를 싸들고 온 보자기로 덮어 집어 들더니 마당에 있는 빨래 삶는 큰 솥에 넣고 뚜껑을 닫는다. 
 “저렇게 독한 년은 처음보네 에이 독한 년”
 하며 진짜로 화가 났는지 할머니는 인상을 쓰며 침을 뱉는다. 솥 안에서도 고양이는 기분이 안 풀렸는지 ‘학학’ 거리며 성질을 부리더니 냄비가 흔들흔들 요동을 친다. 할머니 외엔 만질 사람이 없다. 아침나절에 오신 할머니는 점심을 먹자마자 호미를 챙겨들고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텃밭으로 간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친구네서 놀다 운동장에서 놀다 집에 도착하니 갑자기 고양이 생각이 났다. 하루 종일 잊던 고양이가 궁금해 솥을 발로 툭툭 쳐보니 아무런 반응이 없다. 무서웠지만 고양이가 도망을 갔는지 확인하고 싶어 살살 뚜껑을 열었는데 반응이 없어 좀 더 열어보니 고양이는 온몸이 흠뻑 젖어 누워 있었다. 누가 일부러 물을 뿌린 것처럼 젖어있고 입은 반쯤 벌리고 있다. 손으로 건드리기에 무서워서 빨랫줄에 걸린 수건을 걷어 고양이를 건드려 보니 반응이 없다. 수건으로 감싸 안아 몸에 젖은 물기부터 닦아주고 얼굴을 닦아줬다. 생각보다 말라비틀어진 작은 고양이를 보니 눈물이 난다. 무섭게 ‘학학’거리며 근처도 못 오게 털을 곤두세웠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축 쳐진 힘없는 모습에 마음이 급해져 벌어진 입에 물 한 방울 떨어뜨렸더니 신기하게 입가를 핱는다. 몇 방울을 더 떨어뜨렸더니 눈을 떴다 감는다. 아까처럼 ‘학학’ 거릴까봐 무서웠지만  용기 내어 고양이 이마를 쓰다듬고 털을 쓰다듬어가며 한참을 지켜봤다. 한낮의 햇살로 따스하게 달구어진 앞뜰에 수건으로 감싼 고양이를 조심스럽게 눕히고 밥에 잔멸치와 아침에 먹은 고기국물에  말아 고양이 머리맡에 두고 왔다 갔다 하는 동안 고양이가 언제 일어났는지 밥을 먹고 있다. 멀찌감치 서서보고 있으려니 괜히 눈물이 핑 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작은 소리로 ‘아나구이’ 고양이 이름을 불러보니 야옹하면서 천천히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던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구별이 안 갔다. 머리를 쓰다듬어도 가만히 있고  내 발등에 얼굴을 비비며 따라다니기 까지 한다.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때마침 할머니가 밭에서 돌아오셨다.
 “할머니 아나구이 나왔어”
 “어라 독한 년 도망 안가고 여적 집에 있네”
 하며 할머니가 고양이에게 다가가려하자 고양이는 등을 세우며 처음에 그랬듯이 ‘학학’ 댄다. 할머니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나며 수건으로 고양이를 쫓으며 뭐라 뭐라 욕지거리를 한다.
 아나구이는 가족모두에게는 사납게 굴고 친해지기까지는 오래 걸렸지만 유독 나만 찾아 한동안은 어깨가 으쓱했다


 강아지와 고양이를 키우면서 많은 위로를 받고 사람에게서 찾지 못하는 사랑을 배운다. 개가 안 되는 집이라고 말하는 엄마의 말이 가슴 속에 상처처럼 다가와 소리 없이 없어지는 개를 문 앞에서 울며 기다리고 새롭게 들어오는 강아지를 보면 죽을 때까지 오래오래 같이 살자고 지켜주겠다고 약속한다. 개의 목을 끌어안아주면 귀와 볼을 햩아주며 반가워하고 잘못한 일을 혼내면 듣기 싫어서인지 딴청을 부리는 모습을 보며 사람과 똑같다는 것을 배운다. 고양이도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귀신처럼 알아보고 순서별로 따른다. 아빠는 아침에 화장실가면서 개와 두런두런 대화를 하며 일을 보고 가족에게 말 못할 고민이 있으면 개와 고양이와 마주앉아 대화만 해도 기분이 풀린다. 사람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또 다른 감성을 찾아주는 개와 고양이는 꼭꼭 숨어있는 감수성을 찾아주는 소중한 존재이다.


#이강#이강작가#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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