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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 Jul 30. 2022

고추장 부침개

  4. 고추장 부침개     

 아침밥을 먹고 큰골 밭으로 나가셨는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할아버지의 걸쭉한 트림 소리가 들렸는데 이방 저 방을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다. 발걸음 소리도 없이 사라지는 할아버지는  뒤 곁에서 기침소리가 들려 가보면 그림자도 안보이고 외양간 근처에서 가래질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면 벌써 밭에 나갔다고 한다. 발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동해 번쩍 서해 번쩍 부지런도 하다.

 새참 시간이 되었나! 부엌에서 김치고추장 부침개 냄새가 난다. 오랜만에 맡는 냄새에 아침밥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군침이 돈다. 고추장과 김치가 섞인 말깡한 밀가루 반죽은 도대체가 맛대가리라곤 없어 보이는데 후라이팬에 색이 익어 가면 감칠맛 나는 냄새에  어깨춤이 춰진다. 그냥 김치만 들어가면 이 냄새가 아니다. 고추장이 들어가니 고추장내와  시큼한 김치와 지져지는 기름 냄새는 풍요로운 냄새의 향연이다.

 고추장향이 감도는 부침개를 볼이 터져 라고 밀어 넣고 씹어야 먹을 줄 아는 사람이다. 아무리 애들이라도 조금씩 떼어먹으면 밀가루에 식용유 맛만 느껴질 뿐! 진정한 맛을 느끼려면 이불 개듯 여러 겹을 접어 밀어 넣듯 한입 가득 넣고 씹으면 고추장에 신 김치의 시큼한 맛에  삼박자가 이루어져야 비로소 감동이 온다. 

맛있냐고 물어보는 할머니의 물음에 엄지손가락을 번쩍 들고 부침개가 입에 들어갈 때마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개다리 춤을 춘다.

 뻘건 부침개가 작은 쟁반에 척척 올려지고 방금 텃밭에서 따온  싱싱한 오이가 놓여진다. 평소에는 먹지도 않던 오이가 왜 그리 맛있어 보이는지 할머니는 확실히 음식 궁합을 안다. 술을 못 먹는 할아버지를 위한 시원한 미숫가루와 술을 좋아하는 할머니의  막걸리 주전자까지 광주리에 놓이고  큰골 밭으로 향한다. 

할아버지는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살뜰하게 챙겨주니 말이다. 그런대도 바람을 피워대고 있으니 복을 찬다 복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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