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당

마당

뒷마당

by 이강



1. 뒷마당

말랑말랑하고 촉촉하며 울퉁불퉁하고 뒤죽박죽한 뒷마당은 마구잡이 속에 재미가 가득하다. 맨 뒷자리에는 가지가 휘어져 내려앉을 정도로 덕지덕지 매달린 호두나무 한그루가 버티고 그 옆에는 감은 열리지도 않으면서 오로지 잎사귀만 빡빡한 감나무가 있다. 해마다 할머니는 감나무에 감이 안 열리는 것이 암놈이어야 하는데 수놈이라면서 수놈은 아무짝에 쓸모도 없이 잎사귀만 달고 나온다고 한다. 아마도 할아버지 때문에 수놈에 대한 분노가 있나보다. 감나무 앞쪽으로 기괴한 고염나무가 보이는데 오래된 고목나무처럼 둥치가 두툼한 고염나무는 가지가 뻗기 시작되는 지점부터 반반씩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반쪽은 시커먼 닭발처럼 빳빳한 짧은 가지 몇 개가 뻗어 있고 나머지 반은 은행 알처럼 동글거리는 고염들이 촘촘하게 달라붙어 주홍빛과 초록빛이 어찌나 조화로운지 올라갈 수만 있다면 나무 위에 올라앉아 재대로 감상하고 싶은 심정이다. 고염나무가 반반씩 다른 모습을 하게 된 이유는 어느 날 고염나무에 귀청 떨어지는 벼락이 치면서 나무의 반만 시커멓게 그을리고 말라 비틀어 졌다는 것이다. 반은 초록이고 반은 검은빛이라서 마술에 걸린 마녀처럼 으스스해 보이는 고염나무 덕분에 뒷마당은 몇 배로 운치가 있다. 그 옆에는 키가 큰 상수리나무가 있어 가을이면 뒷마당 전체에 상수리를 뿌려 놓는다. 뒤뜰에 종류별로 큰 나무들이 많으니 작은 숲이나 마찬가지로 새들이 모이고 벌레지가 모이고 바람소리가 모인다.
나무 앞쪽에는 잡초들이 키보다 훨씬 높이까지 자라있고 잡초 속에 잡초가 살고 있고 잡초 속에 또 다른 잡초가 살고 있다. 양손으로 키 큰 잡초를 헤집고 쪼그려 앉아 기다리면 순 십간에 흙 냄새와 풀냄새, 나무냄새의 촉촉한 기운이 돈다. 잠시 할머니 댁 뒷마당인 것을 까먹고 깊은 숲속에 혼자만 남겨진 듯 세상이 조용해지면서 벌레들의 움직임이 느껴지고 벌레가 되어버린 착각이 들어 흙 소리에 귀 기울이면 청개구리, 집게벌레, 무당벌레, 여치, 콩벌레가 사방에서 기어 나온다. 막대기를 주워 폭신한 땅을 파서 진한 흙냄새를 맡아 본다.
땅파기에 질리면 항아리 근처로 가본다. 작은 항아리부터 큰 항아리까지 줄 맞춰 할머니답게 가지런하다. 작은 항아리를 보면 방으로 가져가고 싶은 마음에 들었다 놨다를 반복한다. 거칠거칠 거리며 녹색 빛이 도는 항아리도 있고 고동빛이며 길쭉하게 생긴 할머니 술항아리도, 어른어른 얼굴이 보이는 윤기 나는 항아리도 있다. 항아리가 놓인 바로 옆에는 물놀이하기 좋은 마중물펌프가 있다. 어른들은 두 세 번만 당기면 커다란 주둥이에서 물이 펑펑 쏟아지고 물기 없이 말라있다가도 두 바가지 정도의 물만 넣으면 다라 가득 굵은 물이 시원하게 쏟아지는데 애들은 안되나 보다. 할머니한테 여러 번 지겹도록 배웠지만 물이 나오기는커녕 다라에 남아 있는 물만 쳐먹고 헛손질만 해대니 손바닥만 얼얼하다. 마중물 펌프 근처에는 돌담 밖으로 물이 흐르는 도랑이 있어 뒤뜰은 항상 촉촉하다.

도랑 옆 할머니의 텃밭에는 오이, 참외, 토마토, 수박이 고랑고랑 뒹굴러 다니며 과일 모양은 하고 있지만 죄다 달지도 않고 질겨터진다. 보통 참외보다 큰 할머니참외는 굵고 딱딱한 씨앗 때문에 씨를 뱉어내야했고, 수박은 동그란 모양하나 없이 일그러지고 찌그러지고 맛대가리도 없다. 토마토는 설탕을 뿌려먹을 수 있으니 그나마 먹을 만하다. 놀다가 배고프면 과일을 따먹으라고 여러 번 말을 들었지만 두리번거리기만 할 뿐 할머니 과일은 손이 안 간다.

텃밭을 두리번거리는 이유는 호박꽃 속에 왕벌을 보기 위해서다. 숨죽이고 기다리면 호박꽃 속에 엄지 손가락만한 왕벌이 들어가 꿀을 먹느라 정신 팔려 있을 때 꽃잎을 살살 모아 쥐어 왕벌을 잡는다. 호박꽃 속에서 윙윙 거리며 빠져나가려 버둥거리는 벌 소리를 들으면 손가락이라도 쏘일까봐 던져버리고 싶지만 호박벌의 발길질이 꽃잎 위로 가늘게 느껴질 때마다 무서운 왕벌을 움켜쥐고 있다는 으쓱함에 한참을 쥐고 다니다가 슬그머니 놓아준다. 뒷마당은 왜 그리 재미있는 것이 많을까? 바닥에 박힌 돌멩이 자국만으로도 한나절을 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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