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빨래
덥다고 느끼지 못했던 나이가 아마도 초등학교 때인 듯하다. 놀다가 턱 아래로 땀이 뚝뚝 떨어지면 안 더운데 땀이 왜 떨어지는지 이상했고 어른들의 입에서 덥다는 말을 들으면 귀 등으로 들렸다. 더위에 대한 감각이 없던지 아니면 더위를 잊게 하는 더한 것이 초등학교 때만 존재하는지 더워도 땡볕에서 정신없이 놀았다. 여름방학이면 어김없이 달려가던 할머니 댁은 더 심했다. 하루 종일 땡볕이든 뭐든 가리지 않고 놀기만 했던 여름 놀다 보면 옷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고, 쬐악 볕에 눈을 뜰 수조차 없어도 그늘을 찾지 않았고 논두렁이나 밭 사이 길에서 밀어오는 훈기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정신없이 놀다 정수리라도 만져보면 뜨거워서 손을 얼른 떼기도 했지만 그뿐이다.
한낮에 놀다가 할머니 댁 높은 툇마루에 걸터앉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면 심심한 마당을 가로지르는 빨랫줄이 눈에 들어온다. 좀 전에는 분명 없었는데 어느새 할머니가 다녀갔는지 빨랫줄에 없던 빨래가 널려 있다. 새벽에 밭에 나갈 때 입는 할아버지의 누르스름한 셔츠와 나이롱 줄로 허리를 동여매 입는 헐랭한 줄무늬 바지, 목수건이다. 물에 젖어서인지 누리끼리하고 얼룩거리던 옷가지들은 새 옷처럼 선명해 보이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에 바람이 부는지 기분 좋게 흔들거린다. 발소리도 없이 어느새 빨래만 널고 할머니는 밭으로 나가셨고 할아버지는 장에 가셨나보다. 하여간 주변에 장이 서면 일하다 말고 팔방으로 싸돌아다니니 할아버지가 더 부지런한지 할머니가 더 부지런한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