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은 추억팔이에서 기인한 것일까? 생각해본다
사실 작품에 대한 생각은 끈임없이 이어지고 정립하고 다시 재정립하면서
서서히 실채가 드러나다 사라지다 반복하며 찾아가는 길이라고 본다.
왜 추억팔이를 하게된것일까? 하는 물음은 자나깨나 수없이 던진 질문이다.
당시 정들던 집의 경매와 할머니의 죽음과 동시에 할머니댁의 부재.
그리고 분신과도 같던 연연생 여동생의 유학과. 시골로 시집가면서 서울의 화려한 직장생활의 단절로 인한 소외감
이모든것이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아무리 해결해 보려해도 할수 없던 상황에서 할수 있는것은 낙서하듯 그림을 그리는것이다.
그림은 일종의 치유였으며 도피처였다.
사람은 상처나 트라우마로 자신을 다져간다.
상처는 결코 없어지거나 사라지지는 않는다.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다만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치유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미덕이 그 사람을 드러나게한다.
나는 그림으로 극복하는 방법을 택했으며 추억팔이는 상처를 치유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추억팔이
어린시절의 일상적인 사물을 바라보며 상상하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느낀다.
사물이 품고 있는것은 단지 표면적인 색감이나 구도가 아니라 그 시절의 온도와 향기 웃음소리까지 내포하고 있으며 말하고 싶지 않는 아픔과 슬픔까지 담고 있다. 이불이나 밥상 배게들을 갑자기 사라진 부재에 대한 공허함을 채움과 동시에 누군가가 나를 지지하고 믿어준다는 힘을 느끼게 해준다.
사람이 아니더라도 빽빽한 추억은 든든하게 바쳐준다는 안도감을 준다.
즉 현실에서 받은 왠만한 상처나 아픔의 충격을 흡수하는 쿠션과도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굳이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를 사람으로 치유해야한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람에게만 인정받고 지지 받지 않아도 된다는 커다란 깨닫음에 다다르게 된다.
이처럼 끈임없는 자기 성찰은 하루하루 나를 성장시키며 강하게 만든다.
아아~~~~오마나
이뜻을 알게되다니 오늘 열일을 해냈다. 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