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살고 일하는 청년들의 에세이, OUR SARM
캐나다 물먹은 상하이 사는 남자와
일본 물먹은 싱가포르 사는 남자의 좌충우돌 외노자 이야기.
Magazine OUR SARM.
인생을 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 재밌는 것이 인생 아닐까?
호기롭게 시작한 OUR SARM Vol.1 이후 반년 동안의 공백도 역시 예상과 다른 결과였다.
덕지덕지 불어난 욕심이란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단순하게 가기로 했다.
우리는 매달 우리가 타지에서 살며 외노자(외국인 노동자)로써 사는 희로애락을 전해볼까 한다.
에디터 고건호
나는 요즘 일어나서 회사를 가기 전 꼭 하는 것이 두 가지 있는 데, 그중 한 가지는 역사 책을 읽는 것이다. 그렇게 어려운 역사 책이라기보다는 상식 수준으로 짧게 어원/문화의 배경을 설명하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내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는 회사원이 되고 나서 부터인데, 거래처를 방문하기 전 필수적으로 상대방 회사의 역사를 공부하도록 훈련을 받고 나서부터이다. 상대방 회사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무엇을 중심으로 성장하였으며, 누가 현재 회장이며, 어떤 그룹 계열사들을 보유하고, 보유할 계획인지, 주식회사인지, 가족 경영인지 등 배경과 과정을 이해하지 않으면 장기적인 거래를 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거래처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거래처 직원 / 나의 Counter parts의 배경을 최대한 조사한다거나 알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그 사람이 직원일지라도 회사가 그 사람을 채용한 데에는 이유가 있으며 만약 그 사람을 상대로 영업을 해야 하는 입장일 경우, 거래처 담당자의 배경을 이해해야만 관심사를 이끌어낼 수 있고, 더 나아가 담당자의 상사에게 나와 대화한 내용들을 온전히 제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왜 어렸을 때 아빠 엄마가 관광지 방문 시 꼭 그 장소에 소개가 기재된 게시판을 필수로 읽게 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싱가포르에도 짧고 복잡한 역사가 존재한다. 싱가포르 국립 박물관에 가면 싱가포르가 말레이사 연방으로부터 독립하기 이전부터, 독립하는 과정, 그리고 독립 이후에 모습 등을 자세히 시각 / 청각 자료를 통해 경험할 수 있게 해놓았다. 싱가포르의 국부이자 전 세계에서 존경받는 리더 고 리콴유 총리에 대한 이야기는 싱가포르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너무도 중요하기에 고 리콴유 총리에 대한 소개 및 자료도 많이 있다. 특별히 고 리콴유 전 총리가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 연방으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기자와 대화를 하는 영상을 상영해주는데, 나는 그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싱가포르는 원래 말레이시아의 일부 도시였다. Temasak이라고 하는 중국 무역상이 발견한 작은 도시였고 말레이시아의 연방에 소속이었다. 지식이 부족하여 왜 말레이시아 최 남단에 중국계 화교들이 많이 모이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싱가포르는 화교인들의 도시였고, 중국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것을 반대하였고, 본토 Malay인들을 우선시하였던 말레이시아 연 방은 싱가포르를 분리 시켜버린다. 그 당시 싱가포르의 시장(?)이고 리콴유 총리였으며 아무런 자원도 영토, 인구도 적었던지라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로 분리되었을 때 리콴유 총리는 싱가포르 시민들에게 너무나 부끄러워 얼굴도 못 들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캠브릿지 대학을 졸업하고 법조계에 일원이었던 그는 이미 세계를 보는 시각과 싱가포르의 위치적 이점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자연재해가 거의 없고, 특별히 유럽과 아시아의 물류가 증가함에 따라 절대적으로 유럽과 아시아의 배들이 정박하고 재정비가 필요한 부분을 잘 활용하여 세계 물류 허브로서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낸다.
특별히 영국의 식민지였던 싱가포르는 영국인들의 투자도 많이 받아 냈으며 세계 각국의 Oil & Gas 그리고 제조업체 들의 투자를 유치해냄으로써 서울보다도 작은 국가이며 인구가 550만 밖에 안되지만 GDP 5만 불의 국가로써 성장시킨다. 하지만, 고 리콴유 전 총리는 개발독재자형 리더로서 싱가포르를 전 세계 일류 국가로서 성장시킨 데에 일조한데 반해 권위주의적이며 독재를 해온 것으로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다. 현재 싱가포르에 정당은 소수이며 고 리콴유 전 총리가 속해있던 당이 95% 이상 차지하고 있는 걸 보면 싱가포르가 정치 및 언론적으로 얼마나 탄압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 리콴유 전 총리가 계속해서 전 세계에서 주목하는 리더로 인정받는 이유는 영국과 일본 식민지 시대를 극복하고 인텔리의 일원으로 국가를 세우고 그 국가가 경제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룬 것 그리고 아시아에서 다 문화의 공존을 실현한 인물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고 리콴유 총리는 Minor로써, 태생부터 외지에서 태어나 계속해서 차별받으며 살아온 인물이다. 그러다 보니 차별 없는 국가를 만드는데, 특정 인종이라는 이유로 부당 대응 받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그러면서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인들의 도시도 아니며, 중국인들의 도시도 아니고 인도인들의 도시도 아닌 다민족의 국가를 목표로 잘 성장시킨 세계의 몇 안 되는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물론 차별은 조금씩 존재하지만, 이렇게 많은 국민들이 다 민종에 대하여 성숙한 마인드 셋을 가진 국가는 나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이렇게 다양한 민종과 문화의 위에 경제가 성장되었을 때 그 파급력은 대단하다. 각 국가와의 협력이 보다 쉽게 이루어질 수 있고, 더 많은 외국인들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미 글로벌화는 정말 많이 진전되어 국경은 점점 더 없어지고 있다. 아무리 보호무역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더라도 글로벌화라는 큰 스트림은 막을 수가 없다. 한국은 그중 가장 빠르게 영향을 받고 있는 지역이다. 이미 외국인들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으며 고령화로 인한 노동인구의 감소는 더욱더 가시적인 문제로 부상될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과 북한은 통일은 아니어도 빠르게 경제/문화의 장이 열릴 것이다. 그때에 어떻게 같이 협력하고 공존할 수 있을까에 대해 싱가포르에 사례는 꽤 큰 레퍼런스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선 오픈 마인드가 기본이 되어야 하는데 먼저 우리 경제와 마음 상태에 여유도 있어야 하고, 세계화에 대한 교육이 너무나 필요하다고 느낀다.
(싱가포르에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국립 박물관과 URA(국토개발부)에 꼭 방문하길 개인적으로 추천한다. 단순히 야경을 보고 즐기는 것보다 역사와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큰 레페런스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에디터 김영빈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벌써 10월이 되었다.
서른 살.
이제는 청년보다는 아저씨란 말이 어울리는 나이라 생각한다.
아저씨란 단어를 떠오르면 으레 생각나는 ‘꼰대’스러움에 대해 오늘 이야기해볼까 한다.
사실 이 글은 요새 내가 자꾸 꼰대가 되어가는 것 같다는 불안감에 스스로 반성하고 조심하기 위해 쓰는 글이다.
아재는 되어도.. 꼰대는 되지 말아야지. 라는 차원에서 써보는 글.
꼰대는 나이 든 어른이나 선생님을 지칭하는 은어가 아니라, 어른스럽지 못한 어른을 칭한다.
꼰대는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어져 가며, 양심을 잃어간다.
유독 한국스러운 사람들을 만나면 남일에 참견하고, 구하지도 않은 조언과 도움을 주는 꼰대 오지랖 퍼들이 많다.
나도 사실 꼰대기질을 군대에서 학습했다는 생각이 크다.
캐나다 생활을 잠시 접고 22살에 입대한 나는 이등병으로써 정말 힘든 나날을 보냈다.
왜 화장실을 가야 하는 것마저 모두에게 알려야 하는 거며... 누군가를 깨울 때 흔들어 깨우지 못하고 귓속말 살포시 해야 하는 건지 등등 이해되지 않는, 전해져 내려오던 악폐습들 투성이었다.
이등병 시절 나는 이러한 행태를 보고 나는 선임이 되면 저렇게 되지 마리라. 악폐습 따위는 다 깡그리 집어치우리라 다짐했다.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고, 나 역시 자연스레 일병 그리고 상병이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모든 폐습을 끊고, 편안한 생활관을 만들었을까?
나는 다를 놈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나 역시 먼저 선임들과 똑같은 악마가 되어갔다.
'짬'을 먹고 가슴팍 견장의 배터리가 차갈수록 ‘짬’이 주는 편안함에 어느새 적응해버려 후임들에게 내가 당했던 똑같은 것들을 시키고 있었다. 한국에서 인턴생활을 해보며 느낀 것도 결국 군 생활과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꼰대 질의 대물림은 이어지고 있었다.
제대를 하고, 상하이에 살며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했다.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나와 알아갈때 일단은 나이부터 묻지도, 무슨 일을 하냐, 어디 대학 나왔냐 등의 질문을 던지지 않았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들 내 인생에 대해서 쉽사리 판단하고 이래라저래라 말하지 않았다. 그들에게서 곱게 나이가 드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꼈다.
나이는 벼슬이 아니다.
짐이다.
선배가 되었다는 것은,
직장에서 상사가 되었다는 것은,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늘어난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이를 먹는다는 것도 책임질 짐이 하나씩 어깨에 쌓여간다는 것이지 감투를 쓰는 것이 아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자연스레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커져가는 책임을 지고, 행동하는 것이 어른이다. 내가 스스로 존중받을 행동을 하고 남을 존중해야 나도 존중받는다.
나이 먹었다고 어린 친구들에게 반말 쓸 이유는 없다.
나이 어린 친구들은 경험이 없을 뿐 나보다 더 지식이 뛰어나고, 지혜로운 분들도 많이 봤고, 오히려 나보다 경험이 많은 분들도 많이 봤다.
고백하자면, 나도 나이 먹었다고 내가 더 아는 척, 남을 가르치려고 거들먹거릴 때가 종종 있다.
운동, 커피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면 괜스레 나보다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는 건 진짜가 아냐"라고 거침없이 뱉고 설교했다. 여행 중 마주친 카페들에 대한 평가 역시 더욱이 짧은 몇십분의 방문으로 그들의 장인정신에 대해 맘대로 정의하고 조언했다.
돌이켜보자면 조언 역시 애초에 같은 상황이란 것은 없으며, 사람에 따라 결과가 틀리기 때문에 남의 인생에 쉽사리 조언할 수 없는 것 같다.
배움의 과정을 보여주는 Learning Curve를 보면 나는 Naively Confident 라인에서 지금까지 맴돌고 있던 게 아닐까 싶다.
지극히 아주 얕은 상식과 지식으로 어쭙잖게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성과를 판단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나의 불안한 20대는 그저 세속적인 욕망을 쫓기 바빴다. 그렇기에 그저 보이는 것들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은 보지 못한 채 잘난척하기 바빴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오만방자함을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인정해주고, 너그러운 리더십을 보여준 나의 멘토들 덕분에 나는 리더쉽은 무조건 지시 보단 권유로, 말 보단 행동으로 표하는 것인을 배웠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는 정답이 없다.
여행 역시 각자만의 여행이 있고, 그 여행에는 꼭 남들이 가는 명소에 가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변할 수 있는 것과 변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극단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변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고, 변할 수 없는 것은 상대방이다. 상대방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내 삶을 먼저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계속 배워나갈 수 있다.
가르치려 들려고만 하는 사람은 그냥 나이 많은 꼰대가 된다.
나는 80 먹어서도 20대 친구들과 말이 통하는 사람이 되고 싶기에 난 오늘도 즐거운 배움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스스로 남을 존중하고 질서를 지키면 존경받는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OUR SARM Vol. 5를 맺으며..
세상 어느 곳에 있던 모두가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있다.
‘멋진 사람이 되는 것’
각자가 생각하기에 멋진 사람의 기준은 과거의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수 많은 통계들로 이루어진다.
특별히, 이번 화는 30살 청년이 더욱 더 멋진 어른이 되기위해 겪고 있는 고민들을 담았다.
(리더쉽, 소통, 배려, 사회, 공존, 평등...)
생각이 바뀔 수도 있고, 고민은 또 다른 고민을 낳겠지만,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멋진 어른이 되기를.
-에디터 고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