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불행하게도 맞은편에 초고층 브랜드 아파트가 우뚝 솟았기 때문이다.
덧붙여 우리 집은 경기도 외곽의 10년 차 신도시다.
이런저런 신축건물을 올리느라 아직도 곳곳에서 공사가 한창이지만 기존 상가건물의 공실률은 눈뜨고 보기 힘들 지경이다.
갓 이사를 왔을 때는 베란다 창에 매달려 8차선 도로 건너편의 주상복합이라는 아파트인지 오피스텔인지를 올려다보며 멋있다! 꼭 록펠러 센터 같은데? 하며 철없이 좋아했다.
정말로 밤이면 갓등을 씌운 스탠드를 켜고 미드나잇 뉴욕 재즈바, 호텔 라운지 재즈 따위의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고 운치를 즐겼다.
그러나 출퇴근 도어 투 도어, 왕복 세 시간이 넘게 걸리는 서울의 직장을 다니느라 나는 늘 해가 뜨기 전에 집을 나섰고 해가 진 다음에야 집에 들어갔다.
게다가 주말이면 밀린 잠을 자느라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무렵 언제까지 퍼질러 잘 거냐는 동생의 성화에 못 이겨 간신히 눈을 비비고 일어나 TV 앞에 앉곤 했다.
해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집안일로 분주한 동생에 의해 늘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으니까.
며칠 전, 볼일이 있어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전체적으로 스카이라인이 낮아 우리 집이 한눈에 보였다.
왠지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는데 어라? 우리 동은 왠지 더 그늘 속에 있었다.
낮 1시가 조금 안 된 시간이었다.
모처럼 포근한 날씨였기에 버스 정류장 처마에서는 어제 내린 눈이 연신 녹아 흘렀다.
아직은 해가 들어와야 하는 시간인데 이상하네... 하고 건너편을 바라보니 아뿔싸, 록펠러 센터가!!
저렇게 멀리 있는데도 해를 다 가린다고?
하긴 30층은 되어 보이는 높이에 반해 우리 집은 고작 10층이 조금 넘는 소형 아파트였다.
그중에서도 나는 중간인 6층에 살고 있었고.
지면의 나무가 보이는 중간층이 좋았기에 불만이 없었지만 뉴욕 같다며 좋아했던 고층건물이 소중한 해를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저 건물이 일조권 관련해서 적법하게 시공된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며칠간 관찰한 결과, 저 밉살스러운 미제풍 건물만 아니었다면 뻥 뚫린 시야로 마음껏 햇빛을 받았을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보일러를 틀지 않아도 될 것이고 일몰 전까지 조명을 켤 일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라고 확신했다.
동쪽에는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어 아침이면 온 집안이 환해진다.
그런데 10시쯤 되면 갑자기 암막커튼이라도 친 것처럼 집안이 어두컴컴해진다.
(실제로 이 시간에 렘수면을 경험한다)
그러다 오후 2~3시가 넘으면 서쪽으로 넘어간 해가 길게 집 앞도로를 비춘다.
하지만 결코 집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는다.
간식은 탐이 나지만 경계가 심한 동네 강아지처럼 말이다.
아무리 유혹해 봐도 강아지는 아쉬움만 뚝뚝 남긴 채 제 집으로 돌아가버린다.
아아...
결론적으로 일조권 침해에 대해 알아보니 (당연히) 해당사항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사이드 쪽 입주자들은 운이 좋게도 오후에 양질의 빛을 좀 더 오래, 길게 머금을 수 있겠지만.
예전에 5층 옥탑방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양쪽에 베란다가 있는 증축 비슷한 집이어서 전망은 끝내줬지만 자외선이 문제였다.
월세로 지내는 터라 베란다 창에 블라인드를 달 생각도 못하고 자는 곳에만 레이스 커튼을 하나 달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다이소에서 가림천이라도 사다 달 걸 그랬다. 당시엔 자취 스킬이 부족하던 때였다.
아무튼 몇 년 지내지도 않았는데 베란다에 둔 옷이며 가구가 죄다 바스러져 못쓰게 되었다.
그놈의 자외선 때문에.
여름이면 열기가 빠지지 않아 에어컨도 없는 단칸방을 버리고 집 앞 카페로 피난을 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해는 지긋지긋한 존재였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이렇게나 탐이 나는 걸까.
오늘 아침, 나는 뒤숭숭한 꿈자리와 오십견의 통증으로 여느 때처럼 잠을 설쳤다.
한참을 잤는데도 눈이 때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에는 하지 않는 짓을 했다.
오전 10시쯤 거실로 나와 커튼을 걷고 아직 남아있는 해를 맞으며 방석에 오도카니 앉아있었다.
TV도 켜지 않고 음악도 듣지 않고 그저 해를 쬐고 있었다.
가로 세로 1미터 남짓한 크기의 햇볕 상자에서.
그건 어쩌면 꿈이거나 몽유병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마치 양지바른 곳에서 식빵을 굽는 고양이처럼 미동도 없이 앉아있다가 마지막 한 줄기까지 빼앗기고 나서야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일어섰다.
다시 밤인가 싶을 정도로 어두워진 탓에 도로 침대로 기어들어 갔던 거 같다.
얼마인가 또 잠이 들었다가 이번엔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2차로 기상을 했다.
어제 먹다 남긴 그래놀라를 두유에 말아 바나나, 방울토마토와 함께 먹었다.
운동량이 없으니 자연스레 소식을 하게 되고 인과관계에 의해 뱃살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흡족해했다.
먹고 치우고 나니 다시 해가 들어올 시간이라 나는 또 거실 창 앞에 앉았다.
오늘따라 겨울 햇님은 우리 집 앞 도로를 겨우 비출 뿐, 유독 힘이 없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집안 정리를 하다 무심코 밖을 내다보곤 깜짝 놀랐다.
갑자기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눈은 순식간에 쌓였고 도로 위의 자동차와 오토바이들은 거북이가 걸어가듯 아주아주 느린 속도로 신중하게 이동 중이었다.
눈소식이 있긴 있었구나.
게다가 이런 대설이라니...
나는 또 멍해져서는 눈이 내리는 것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창밖의 저 하얀 풍경 또한 꿈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니 부디 좋은 꿈이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