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이야기가 되다.
커피를 주제로 글을 쓰면서 일관되게 가졌던 생각은 ‘다르다는 것에 대한 존중’이다. 환경이 다른 곳에서 자란 커피의 향과 맛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나는 삶이 편견과 선입견의 틀에 갇혀 있지 않은지 자주 되돌아보게 된다.
오래지 않은 과거에 오른손을 바른손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우리 사회는 제도와 이념, 관습, 도덕이라는 시스템에서 벗어난 생각과 행동을 옳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공정하지 못한 사회일수록 약자나 비주류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다른 것’과 ‘틀린 것’의 차이를 분별하는 힘은 약하다. 이런 이유로 인간은 대다수의 인식에 반하는 관점을 가지거나 표현하는 것을 주저하게 되고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지 않을까 걱정한다.
인간은 옳고 그름, 진보와 보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와 같이 대척점에 서 있는 수많은 가치들이 혼재된 공간에 살면서 특정한 가치를 선택하거나 선택을 강요당하는데 이분법적인 생각이나 흑백논리는 언제나 비판의 대상이 되기에 자신의 입장을 논란이 되지 않을 만큼 적당히 포장하기도 한다.
나는 이러한 시스템이 인간의 본성을 왜곡시킨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며 이에 반한 행동을 하기 위해 매일 조금씩 고민한다. 나의 작업 ‘자석의 은유(Magnetic Metaphor)’는 그런 생각으로 시작되었다.
자석은 참 재미있는 물질이다. 무수히 잘게 쪼개어 원자가 되어도 하나의 몸속에 서로 다른 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떠한가? 신기하게도 인간 세상 또한 끊임없이 다른 두 가지 생각이 공존한다. 그것은 앞서 예로 든 옳고 그름, 진보와 보수와 같은 등가의 개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과 소유하고 있지 않은 것,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한 본질이다.
지금 입고 있는 옷, 먹고 있는 음식, 쉬고 있는 집, 타고 있는 차 그리고 하고 있는 생각들은 세상에서 유일한 자신만의 것이며 우리는 이를 ‘다르다’라는 말로 표현한다. 여기서 소유하고 있는 대상이나 목적을 제거하면 우리 자신은 세상에서 유일한 무언가에 닿아 있거나 닿아 있지 않은 상태가 된다. 이를 인지하는 순간 우리는 편견과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캔버스에 그려진 색은 그러한 생각의 표현이다. 건강과 부귀영화를 동경하고 악귀를 쫓아내려는 차이나 레드(Chinese Red)가 아니며, 평온한 마음을 갖게 해 준다는 믿음을 가진 돌 라피스 라즐리(lapis-lazuli)의 푸른색이 아니다. 가치 판단을 잠시 보류하고 자신에게 닿아 있는 모든 것을 존중하는 순간 복잡하게 교차된 색은 다르다는 이유로 소유를 꿈꾸게 되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형상이 되어 나타난다.
나는 자석을 알코올램프로 가열하면서 인간의 죽음을 떠올린다. 뜨거운 열기에 노출된 녀석은 생명체의 마지막 순간과 같이 극성을 잃어버린 채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며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의 본질이 되어 해와 달의 형상으로, 시작과 끝의 개념으로 영원히 살게 된다.
핸드드립 카페에서 현대미술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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