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이야기가 되다.
바 테이블에 앉은 손님이 커피를 주문하면 추출을 하기 전에 먼저 분쇄한 커피를 건넨다. 핸드드립 카페를 처음 방문하는 손님들은 자신의 앞에 놓인 분쇄된 커피를 한참 동안 멀뚱멀뚱 쳐다보며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할지 난감해한다. 눈치껏 향기를 맡아보고 나에게 바로 돌려주는 사람도 있는데 그 즉시 동행한 지인들은 왜 혼자만 향기를 맡고 반납하냐며 투정을 부린다. 그래서 나는 처음 오는 손님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향기를 맡아 보고 오른쪽으로 전달해 주세요.”
뜨거운 물을 드립포트에 붓고 추출을 준비하는 동안 손님들은 분쇄된 커피를 돌려가며 진한 커피의 향기를 즐긴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향기를 평가한다.
지난번 ‘로스팅 후 커피가 제일 맛있는 시점은?’에서 향기와 맛에 대해 설명한 것처럼 사람은 커피의 맛보다는 향기를 즐긴다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이다. 그래서 커피를 마실 때 보다 향기를 맡은 후에 더 큰 리액션을 보이는데 커피를 마시는 것보다 커피를 분쇄할 때의 향기가 집안 가득 퍼지는 게 더 좋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커피는 정말 좋은 향기가 난다. 예전에는 커피의 향기를 커피라는 것 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지만 요즘은 다른 종류의 식물이나 식품의 향기에 비유하여 세세하게 표현한다. 가정에서 핸드드립을 즐기고 있거나 커피에 대한 공부를 조금이라도 한 사람이라면 이런 표현에 익숙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스페셜티 커피의 향기 평가에서는 과일, 꽃, 허브, 견과류 등에서 느낄 수 있는 향기의 강도와 풍부한 정도가 주요 척도가 되는데 비유가 되는 대상이나 사용되는 어휘들 대부분이 외국에서 유래된 것이라 우리 정서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스트로베리, 크랜베리, 블루베리, 블랙베리, 라즈베리 등과 같은 딸기(Berry)류는 우리가 즐겨 먹는 과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향기를 커피에서 발견하거나 구분해 내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향기 특징은 딸기, 산딸기, 오디 등으로 바꾸어 표현하는 것이 훨씬 익숙하다.
핸드드립이나 싱글 오리진 커피를 처음 접하는 손님들의 경우 커피의 향기를 정말 독특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낯설고 어색하기는 하지만 표현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소중한 자료가 된다. 예를 들면,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내추럴 커피의 경우 일반적으로 딸기나 체리, 복숭아의 달달한 향기가 특징인데 분쇄된 커피에서 청국장이나 짜장면의 냄새가 난다는 손님들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이샤의 경우 재스민이나 라벤더와 같은 꽃향기보다 군고구마의 단향을 더 익숙하게 느끼기도 한다.
때로는 자신의 느낌이 틀리지 않았을까 위축된 모습을 보이는 손님도 있는데 전문가가 알려주지 않았거나 교재에 없다고 해서 잘못된 표현을 한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자신이 느낄 수 없는 것을 수긍해야 할 이유는 없다. 경험하고 살아온 환경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커피는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자.
개인적으로 그동안 경험했던 인상 깊은 커피의 향기는 매운 향이다. 커핑(Cupping)에서 매운 향은 주로 ‘스파이시(Spicy)하다.’라는 용어로 표현을 하는데 음식의 양념이나 겨자, 생강, 육두구 등의 향신료에서 나는 매운 향을 연상하면 된다. 시다모 데리 코초하 워시드(Sidamo Deri Kochoha Washed)에서 느낄 수 있는 계피(시나몬) 향도 같은 부류로 볼 수 있다.
커피에서 매운 향을 제대로 느껴 보고 싶다면 코스타리카 올데마르 아리에타(Oldemar Arrieta), 인도네시아 와하나 허니 내추럴(Wahana Honey Natural) 커피를 마셔보라. 이들 커피에서는 태양초를 빻아 놓은 것 같은 매운 향이 나는데 예민한 손님들의 경우 향기만 맡아도 혀끝이 ‘쎄하다(맵고 아린다는 경상도 사투리)’라고 할 정도다. 특히 인도네시아 와하나 허니 내추럴은 그 강도가 정말 강했는데 추출한 후 약간 식은 상태에서는 고추장의 향기가 느껴진다.
품종이 전혀 다른 두 커피에서 매운 향이 나는 공통점을 굳이 찾는다면 내추럴 프로세싱(Natural Processing)이라는 것이다. 가공과정에서 산도조절을 위한 별도의 처리를 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달고 향긋한 커피 과육이 발효과정을 거치며 그러한 향미를 갖게 한다는 예상을 할 수 있다. 특이한 것은 에티오피아의 내추럴 프로세싱 커피에서는 그런 향미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커피에 설탕과 크리머를 타서 먹던 시절을 떠올려 보면 ‘커피는 쓰다.’라는 말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짙은 호박색의 음료에서 나는 오묘한 향기를 ‘커피 향기’라는 것 외의 다른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그때와 비교하면 커피를 즐기는 문화가 정말 풍성해졌다.
아프리카의 시골 마을을 직접 여행해 볼 수는 없지만 그들이 땀으로 일군 커피 한 잔으로 그들의 삶을 떠올리고 공감하는 기회를 가져보자. 커피를 가까이 함으로써 새로운 농장과 색다른 향미를 찾고 즐기는 재미가 생길 것이다.
*커핑(Coffee Cupping) : 커피의 맛을 감별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