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난다 Jun 18. 2017

커피와 사랑에 빠진 사람들

커피, 이야기가 되다.

1인당 커피 소비량은 늘어나는데 길거리의 자판기는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믹스커피의 판매량이 줄어드는 걸 보면 커피를 즐기는 문화가 양적으로는 물론 질적으로도 빠른 성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길거리에 편의점이 많은지 카페가 많은지 내기를 걸어도 될 만큼 커피를 즐기는 문화는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스며들었다.

커피를 주제로 이야기의 꽃을 피우고 커피라는 ‘합법적인 마약’에 푹 빠져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조금만 관심 있게 살펴보면 자신과 친분이 있는 누군가는 분명 커피 자격증 하나쯤 벽에 걸어두고 있을 것이다.  


경기도에서 교사로 근무하는 친구는 커피 때문에 보통 걱정이 아니라는 말을 했다.


“교장 선생님 때문에 못 산다. 정말.”

“왜?”

“매일 로스팅해서 커피를 주시니까 완전 부담돼.”

“우와! 교장선생님이 로스팅을 하셔? 대단하다. 근데, 뭐가 부담되냐? 공짜로 좋은 커피도 먹고 고맙지.”

“그게 아니라. 매번 커피 맛이 어떠냐고 물어보시는데 뭐라고 말해야 될지 모르겠어.”


땀을 뻘뻘 흘려가며 수망을 열심히 흔들고 있는 나이 지긋한 교장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리면 웃음이 난다. 하지만 커피를 특별히 즐기지도 않는데 매번 색다른 리액션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친구의 입장을 생각하면 마냥 훈훈하고 재미있다고만 할 수는 없다.


아마도 교장선생님은 영화 쉘 위 댄스(Shall We Dance?, 1996)의 주인공 스기야마처럼 60여 년을 살아오는 동안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즐거움을 발견한 것이 분명하다. 세상의 모든 커피를 볶아서 맛을 보고 싶은 욕심에 자신의 일상 구석구석 생두와 커피 서적, 추출 기구들을 쌓아 두고 퇴근 시간이 어서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영화 쉘 위 댄스(Shall we dance? 1996)의 한 장면

프라이팬과 수망으로 터득한 자신만의 로스팅 프로파일은 이미 세상 최고의 기술이며, 커피의 색이 변하고, 원두가 터지는 소리에 모든 시름을 잊는다. 집안을 가득 채운 커피 향기에 샤워를 하며 이렇게 좋은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불쌍한 중생들을 구원해야겠다는 일념으로 교장선생님의 인생 2막이 시작되었다.


나는 친구에게 커피의 향미를 평가할 때 사용하는 용어 리스트를 인쇄해 주면서 어차피 커피 감정을 해야 할 상황이니 ‘과일 같은 신맛이 어떻고, 바디감은 어떻고, 후미는 어떻고’ 하는 구체적인 표현 방법을 공부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친구 또한 커피의 마력에 빠져 또 다른 누군가를 괴롭히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 친구는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나는 커피가 얼마나 무서운 녀석인지 머지않아 알게 될 것이라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카페 일을 하면서도 교장선생님과 유사한 사례를 겪은 적이 몇 번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시청에 근무하는 과장님이었다. 매주 한두 번씩 원두를 사러 오는 시청 공무원이 하루는 과장님을 모시고 왔다. 나는 누추한 곳에 일부러 손님을 모시고 온 게 고마워서 카페와 로스실을 구경시켜 드린 후에 평소보다 더 집중해서 커피를 내렸다. 그런데 과장님은 연하게 내린 예가체프를 한 모금 마시고는 ‘커피가 왜 이렇게 쓰냐?’며 잔을 밀어냈다. 녹차는 마셔도 이런 커피는 안 마신다는 과장님의 말에 같이 온 공무원은 내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 일이 있은 후 한 달쯤 지났을까? 점심시간이라 바쁘게 손님을 맞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손님이 들어오더니 동행한 손님에게 카페 이곳저곳을 설명하고 내 허락도 없이 로스팅실을 들락날락했다.


‘뭐하는 사람이지?’


기분이 나쁜 건 둘째치고 너무 황당했다.


“무슨 일로?”

“나 몰라요? 저번에.”

“아! 과장님?”


정말 의외였다. 평소에 잘 알던 손님이라면 그런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겠지만 카페에 딱 한번 와서 이런 커피는 안 마신다며 잔을 밀어냈던 과장님이 마치 나를 잘 아는 것처럼 온 카페를 휘젓고 다니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과장님을 모셔왔던 공무원에게서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야 과장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과장님은 그날 이후 부서에 손님이 방문하면 맨 날 자신을 불러 핸드드립을 커피를 내리게 한다는 것이다. 원두를 갈고 직접 커피를 내려서 대접을 하니 그곳을 방문한 손님이나 대접을 하는 과장님의 기분이 어땠을지 짐작이 갔다. 나와 과장님의 시간은 그대로인데 과장님과 커피의 시간은 너무나도 빠르게 흘러간 것이다.

황당한 일이 있은 뒤로도 과장님은 잊을만하면 한 번씩 카페에 찾아와서 여기 커피가 최고라며 같이 온 손님들에게 카페 홍보를 해 주셨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유럽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다며 동행한 손님들에게 어찌나 커피에 대한 설명을 잘 해 주시는지 내가 끼어들 틈이 없을 정도다.


누군가를 만날 땐 커피가 함께 하고 어떤 종류의 식사를 해도 반드시 끝에는 커피여야 하는 일상은 예전부터 있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왜 커피를 공부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커피를 권하는가? 나는 그 답을 커피 업계에 밀려든 제3의 물결에서 찾는다.

커피 업계가 만든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커피 문화가 붕괴되고 커피의 생육과 가공, 유통 과정을 개인이 들여다볼 수 있는 시대가 열림으로써 자기 주도적으로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이제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생두를 구입해서 직접 볶고, 마시고, 나누는 일을 적은 비용으로 손쉽게 할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에게 생전 느껴보지 못한 희열을 준다. 커피는 우리나라에서 상업적으로 재배되지 않는 농작물이고 커피를 즐기는 문화 또한 이국적이기 때문이다.


무기력해진 삶에 변화를 주고 싶다거나 힘든 일을 이겨 내기 위해 무언가에 몰입하고 싶을 때 커피라는 새로운 물결에 뛰어들어 보기를 바란다. 여러분이 바로 ‘Shall we coffee?’의 주인공이 될테니까.


Shall we coffee?

매거진의 이전글 카페 음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