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난다 Jun 15. 2017

카페 음악

커피, 이야기가 되다.

선곡을 하는데 가장 많은 도움을 받는 곳은 ‘KBS 클래식 FM 세상의 모든 음악’이다. 운전 중에 우연히 켠 라디오에서 나오는 생전 처음 접하는 음악에 이끌려 듣게 된 프로그램인데 마음에 드는 음악이 있으면 다음 날 꼭 mp3를 구입해서 카페에 틀어 놓는다.

출처 : KBS 라디오 홈페이지

요즘은 일본계 브라질인 2세 리사 오노(Lisa Ono)의 노래를 주로 듣는다. 대학 시절 학점을 따기 위해 시작한 어린이용 바이엘을 상권도 못 마친 내가 보사노바라는 음악 장르를 이렇게 찾아서 듣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여긴 다 좋은데 하나가 딱 아쉽네요!’


카페를 방문하는 손님 대부분이 원두를 구입하러 오는 단골들이라 좁고 심심한 카페 인테리어나 빵 조각 하나 판매하지 않는 주인의 게으름에 대해서 별로 불평을 하지 않는데 가끔 지적하는 것이 카페 음악이다.


음악에 대한 손님의 의견은 크게 두 가지다. 대중가요보다는 클래식이 카페에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것과 좀 더 성능이 좋은 스피커를 사용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카페를 운영하면서 손님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을 골라 선곡을 했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나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냥 내 마음을 움직인 음악만 골라서 듣는다. 전날 라디오에서 귀를 쫑긋하고 들었던 음악을 이른 아침 조용한 카페에 앉아 감상할 때의 기분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사치스럽게도 그 시간에는 나를 위해 정성 들여 내린 커피 한 잔이 늘 함께 한다. 지구 상에 이런 아침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나는 mp3 파일을 USB에 담아 꽂기만 하면 재생이 되는 만 원대 스피커를 사용하고 있다. 주먹만 한 녀석이 얼마나 튼튼하든지 오픈할 때부터 지금까지 고장 한번 나지 않았다. 거기에 볼륨 게이지를 반만 올려도 카페가 시끄러울 정도로 꿀 성대를 가졌다. 물론 피부의 작은 솜털을 일으켜 세울 만큼 전율을 느끼는 그런 사운드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성능이 뛰어난 음향시설이나 음원을 가까이해 온 귀가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음악이 아니라 소음일 수도 있다.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나 특급 호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더 맑고 풍부한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성능이 좋은 앰프와 스피커를 찾아볼까 수도 없이 생각했지만 이미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 버린 녀석이 ‘저를 버리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아 차마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언젠가 녀석이 생명을 다해 새로운 스피커를 들여오더라도 카페 어딘가에는 할 일 없는 녀석의 자리를 내어주어야 할 것 같다.


‘음악은 바다와 같은 것입니다.’


부활의 김태원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으로 나와서 했던 말이다. 어느 나라 해변에 닿아 있든 바다라 부르고, 누구의 두 손에 담겨 있어도 바다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처럼 세상의 모든 음악이 음악이다. 힙합이나 랩은 세련되고 트로트는 구식이라는 생각, 클래식은 고상하고 대중가요는 가볍다는 논리는 가늠할 수 없는 음악이라는 바다 앞에서 한없이 초라한 것이다. 그래서 유현상이 트로트를 부르고, 임재범이 발라드를 부르는 것을 이상하게 볼 이유가 전혀 없다.


나는 김태원의 말을 이곳저곳에 갖다 붙인다. 직업도 바다와 같고, 대학도 바다와 같고, 음식도 바다와 같다. 세상 무엇이든 그의 말이 정답이더라. 형상만 다를 뿐 본질은 같은 것이니까.


‘커피도 바다와 같은 것입니다.’


나는 커피가 앞에 있으면 좋고 나쁨, 옳고 그름, 귀하고 천함이라는 단어들을 카페 한쪽 구석에 꿇어 앉혀놓고 두 손을 들게 한다. 비교하고 순위를 매기는 일에 관심이 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겠지만 커피 앞에서는 자제하려고 한다. 국적이 다르고, 농장이 다르고, 품종이 다르고, 가공 방식이 다르고, 가격이 다른 커피만 있을 뿐 각각의 가치는 높낮이를 따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번 함께 웃자고 쓴 ‘대한민국 커피 신분제도’라는 글도 내용을 잘 살펴보면 커피를 통해 모든 것을 존중하자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손님이 없는 카페에 ‘삐딱하게’를 열창하는 GD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나는 노트북 키보드에 손을 올린 채 머리와 어깨를 들썩거린다. 도도하게 앉아 있는 커피 잔들이 눈에 들어온다.


‘저런 내숭덩어리들을 봤나!


이렇게 한 번씩 미칠 듯한 파동으로 샤워를 하는 녀석들이 손님 앞에서 커피를 가득 안은 채 우아하게 앉아 있다. 인간과 다르지 않다. 가식이 흘러넘치지만 충분히 애교로 보게 되는 건 커피라는 이름으로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한민국 커피 신분제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