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이야기가 되다.
선곡을 하는데 가장 많은 도움을 받는 곳은 ‘KBS 클래식 FM 세상의 모든 음악’이다. 운전 중에 우연히 켠 라디오에서 나오는 생전 처음 접하는 음악에 이끌려 듣게 된 프로그램인데 마음에 드는 음악이 있으면 다음 날 꼭 mp3를 구입해서 카페에 틀어 놓는다.
요즘은 일본계 브라질인 2세 리사 오노(Lisa Ono)의 노래를 주로 듣는다. 대학 시절 학점을 따기 위해 시작한 어린이용 바이엘을 상권도 못 마친 내가 보사노바라는 음악 장르를 이렇게 찾아서 듣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여긴 다 좋은데 하나가 딱 아쉽네요!’
카페를 방문하는 손님 대부분이 원두를 구입하러 오는 단골들이라 좁고 심심한 카페 인테리어나 빵 조각 하나 판매하지 않는 주인의 게으름에 대해서 별로 불평을 하지 않는데 가끔 지적하는 것이 카페 음악이다.
음악에 대한 손님의 의견은 크게 두 가지다. 대중가요보다는 클래식이 카페에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것과 좀 더 성능이 좋은 스피커를 사용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카페를 운영하면서 손님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을 골라 선곡을 했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나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냥 내 마음을 움직인 음악만 골라서 듣는다. 전날 라디오에서 귀를 쫑긋하고 들었던 음악을 이른 아침 조용한 카페에 앉아 감상할 때의 기분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사치스럽게도 그 시간에는 나를 위해 정성 들여 내린 커피 한 잔이 늘 함께 한다. 지구 상에 이런 아침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나는 mp3 파일을 USB에 담아 꽂기만 하면 재생이 되는 만 원대 스피커를 사용하고 있다. 주먹만 한 녀석이 얼마나 튼튼하든지 오픈할 때부터 지금까지 고장 한번 나지 않았다. 거기에 볼륨 게이지를 반만 올려도 카페가 시끄러울 정도로 꿀 성대를 가졌다. 물론 피부의 작은 솜털을 일으켜 세울 만큼 전율을 느끼는 그런 사운드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성능이 뛰어난 음향시설이나 음원을 가까이해 온 귀가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음악이 아니라 소음일 수도 있다.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나 특급 호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더 맑고 풍부한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성능이 좋은 앰프와 스피커를 찾아볼까 수도 없이 생각했지만 이미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 버린 녀석이 ‘저를 버리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아 차마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언젠가 녀석이 생명을 다해 새로운 스피커를 들여오더라도 카페 어딘가에는 할 일 없는 녀석의 자리를 내어주어야 할 것 같다.
‘음악은 바다와 같은 것입니다.’
부활의 김태원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으로 나와서 했던 말이다. 어느 나라 해변에 닿아 있든 바다라 부르고, 누구의 두 손에 담겨 있어도 바다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처럼 세상의 모든 음악이 음악이다. 힙합이나 랩은 세련되고 트로트는 구식이라는 생각, 클래식은 고상하고 대중가요는 가볍다는 논리는 가늠할 수 없는 음악이라는 바다 앞에서 한없이 초라한 것이다. 그래서 유현상이 트로트를 부르고, 임재범이 발라드를 부르는 것을 이상하게 볼 이유가 전혀 없다.
나는 김태원의 말을 이곳저곳에 갖다 붙인다. 직업도 바다와 같고, 대학도 바다와 같고, 음식도 바다와 같다. 세상 무엇이든 그의 말이 정답이더라. 형상만 다를 뿐 본질은 같은 것이니까.
‘커피도 바다와 같은 것입니다.’
나는 커피가 앞에 있으면 좋고 나쁨, 옳고 그름, 귀하고 천함이라는 단어들을 카페 한쪽 구석에 꿇어 앉혀놓고 두 손을 들게 한다. 비교하고 순위를 매기는 일에 관심이 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겠지만 커피 앞에서는 자제하려고 한다. 국적이 다르고, 농장이 다르고, 품종이 다르고, 가공 방식이 다르고, 가격이 다른 커피만 있을 뿐 각각의 가치는 높낮이를 따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번 함께 웃자고 쓴 ‘대한민국 커피 신분제도’라는 글도 내용을 잘 살펴보면 커피를 통해 모든 것을 존중하자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손님이 없는 카페에 ‘삐딱하게’를 열창하는 GD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나는 노트북 키보드에 손을 올린 채 머리와 어깨를 들썩거린다. 도도하게 앉아 있는 커피 잔들이 눈에 들어온다.
‘저런 내숭덩어리들을 봤나!’
이렇게 한 번씩 미칠 듯한 파동으로 샤워를 하는 녀석들이 손님 앞에서 커피를 가득 안은 채 우아하게 앉아 있다. 인간과 다르지 않다. 가식이 흘러넘치지만 충분히 애교로 보게 되는 건 커피라는 이름으로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