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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난다 Jul 25. 2017

커피를 분쇄해서 판매하지 않는 이유

커피, 이야기가 되다.

“사장님! 이것 좀 갈아 주실 수 있어요?”


손님이 건네는 원두 봉투의 상단을 가위로 잘라낸 나는 전동 그라인더에 원두 100g을 모두 붓고 전원 버튼을 누른다. 원두가 분쇄되는 동안 엄청나게 뿜어져 나오는 커피 향을 혼자 독차지하고 있으니 손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손님이 커피를 마실 때마다 원두를 조금씩 분쇄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


되도록 먹기 전에 갈아드세요. 갈아서 보관할 거면 굳이 향미가 좋은 비싼 커피를 살 이유가 없거든요.”


로스터리 카페와 원두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커피를 분쇄해서 판매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금껏 지켜왔다. 물론 100%는 아니다. 카페를 방문한 손님이 집에 그라인더가 없다며 부탁을 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내가 항복을 해야 한다.


‘원두는 분쇄된 상태로 보관하면 안 돼요.’


커피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할 말이다. 커피를 보관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고 또 당연한 사실이라 커피 관련 자격시험의 문제로도 자주 출제가 된다.

그렇다. 커피는 홀빈(Whole Bean) 상태로 보관해야 하고 마시기 직전에 갈아야 한다. 분쇄된 커피는 공기와의 접촉면이 많아서 산패가 빠르게 진행되고 향기도 쉽게 사라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로스팅 과정에서 생성된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가 버려서 핸드드립으로 추출할 때 커피가 부풀어 오르는 재미를 느낄 수도 없다.

하지만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대한민국의 유명 커피 브랜드는 물론 업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큐그레이더 인스트럭터(Q-Grader Instructor), 로스팅 마스터(Roasting Master) 할 것 없이 자신들이 운영하는 원두 쇼핑몰에서 원두를 분쇄하여 판매하고 있다.

원두 쇼핑몰을 전수 조사해 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찾아본 곳 중 유일하게 홀빈(Whole Bean)만 판매하는 곳은 강릉의 보헤미안 커피다.


‘드르륵드르륵’


원두를 핸드밀로 분쇄할 때 전해지는 진동과 소리, 그리고 코를 자극하는 신선한 커피 향기는 일상을 풍요롭게 한다. 하지만 많은 양의 커피를 핸드밀로 분쇄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노동이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므로 일부 소비자들은 분쇄된 커피를 구입하기를 원한다.

원두를 판매하는 사람에게 ‘커피의 품질유지’‘소비자의 편의’ 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것은 가혹한 요구다. 그래서인지 향미가 뛰어난 스페셜티 커피만을 엄선하여 판매한다는 것을 강조하거나 교육생과 소비자들에게 원두를 분쇄한 상태로 보관하지 말라는 주의를 주면서도 그들이 원하니까 분쇄된 커피를 그냥 판매하고 있다. 사교육이 옳지 못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학원을 운영해야만 하는 사람의 입장이라고 해야 할까?


‘내 가게에 들어온 고객은 절대 그냥 보내지 않는다.’


성공한 사업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했던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합법적인 방법으로 더 많은 자본을 손에 쥐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존중받아야 할 행동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커피로 성공신화를 쓰기에는 자질이 부족한 게 분명하다. 왜냐하면 오늘도 ‘쇼핑몰에 왜 분쇄 옵션이 없나요?’라고 불평하는 손님을 그냥 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분쇄된 커피를 택배로 보내는 것보다 그냥 판매하지 않는 것이 더 마음 편한 것을.


커피의 향미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신선한 원두를 선택하는 것만큼이나 원두를 바르게 보관하는 게 중요하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시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여러분들 앞에 놓인 커피 잔에 담겨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큐그레이더 인스트럭터(Q-Grader Instructor)

큐그레이더는 ‘아라비카 커피 감정사’를 일컫는 말로 커피의 향미를 감정하고 평가하는 사람입니다.

큐그레이더 인스트럭터는 큐그레이더를 양성하는 감독관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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