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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난다 Jul 21. 2017

커피의 신맛을 좋아하나요?

커피, 이야기가 되다.

어제는 커피의 신맛(Acidity) 때문에 고민이라는 손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손님은 홈 로스팅을 하면서 나보다 훨씬 오랜 시간 커피를 즐겨왔고 지역에서 각종 커피 교육의 강사로도 활동하는 분이다. 

손님은 자신이 평소에 즐겨 마시는 예가체프 커피를 친구에게 직접 핸드드립으로 내려주었다. 그런데 커피의 맛을 본 친구는 신맛이 약해서 고유의 향미를 느낄 수 없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친구의 격한 리액션을 기대했던 손님은 졸지에 격이 떨어지는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아 기운이 빠진다고 했다. 자신이 느끼기에는 충분히 좋은 신맛인데 친구는 그 정도 신맛은 신맛도 아니라며 정색을 했다는 것이다. 

그 일이 있은 뒤에 친구가 맛을 보라고 권한 예가체프는 손님의 입장에서는 정말 시어도 너무 시어서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였다고 한다. 도저히 그대로는 먹을 수 없어서 결국 원두를 한 번 더 로스팅(더블 로스팅)을 해서 더치커피로 내려먹었다고 한다. 


커피의 향미에 대해 누가 어떤 표현을 하더라도 모두 존중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당황스러운 일을 겪은 손님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입장에서 커피의 신맛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커피는 ○○’


○○에 들어갈 말은 무엇일까? 향기? 사랑? 블랙? 사람마다 무수히 많은 단어를 떠올릴 테지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쓰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아! 그렇지.’라며 맞장구를 칠 것이다. 커피에 크리머와 설탕을 타서 먹어본 세대라면 당연히 공감할 이야기다. 

카페마다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를 사용한다는 광고 문구가 걸려 있는 최근에는 지역과 농장, 품종에 따라 다른 커피 고유의 향미를 살리기 위해 생두를 약하게 로스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경향으로 소비자들은 커피의 신맛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커피의 신맛을 ‘산미(酸味)’라는 한자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커핑을 해 본 사람이면 커피의 산미가 커피를 평가하는 아주 중요한 척도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다시 손님의 상황을 돌이켜 보자. 손님이 느끼는 좋은 신맛과 친구가 느끼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커피는 기호식품이기 때문에 의견이 다른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어느 한쪽에서 상대방의 견해를 틀린 것으로 단정해 버리는 데서 갈등이 생긴다. 


일반적으로 커피에서 느낄 수 있는 좋은 신맛은 딸기, 체리, 블루베리, 복숭아, 살구, 망고, 포도, 오렌지, 사과 등과 같은 신선하고 달달하고 상큼한 과일의 신맛을 말하며 과일의 향미가 강하고 풍부한 커피는 높은 가격으로 거래가 된다. 

신맛으로 인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입안이 환해지고 청량감을 느끼게 해 주는 인산(Phosphoric Acid) 또한 좋은 신맛으로 분류되는데 콜라를 마시고 난 후에 입안이 ‘화’ 해지는 느낌을 떠올리면 된다. 인산은 화산지대나 케냐 지방의 커피에 많이 함유되어 있다.

커피의 신맛이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니다. 덜 익은 과일이나 식초를 먹었을 때처럼 혀가 아리고 인상이 찌그러질 정도로 강한 신맛을 초산(Acetic Acid)이라고 하는데 이는 커피의 향미 중 좋지 않은 신맛으로 분류한다. 커피를 너무 약하게 볶아서 커피 생두가 설익은 상태이거나 원두가 오래되어 산패(Rancidity)하면 좋지 않은 신맛이 난다. 

커피 생두에 함유되어 있는 클로로겐산(Chlorogenic Acid)은 항산화 작용을 하는 이로운 성분인데 로스팅 과정에서 2차 크랙에 도달할 즈음 가수분해 되어 퀴닉 산(Quinic Acid)으로 변한다. 퀴닉 산은 떫고 쓴 맛을 내는 성분으로 커피의 좋은 신맛과는 거리가 먼 산(Acid)으로 분류된다. 


설익은 밥, 제대로 된 밥, 탄 밥을 놓고 각각의 밥맛을 공정하게 비교할 수 없는 것처럼 커피의 신맛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표준화된 로스팅이 선행되어야 한다. 

미국스페셜티커피협회(SCAA)에서는 샘플 로스팅(Sample Roasting)을 규정해 놓고 있는 데 커피가 가진 고유의 향미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로스팅 방법이라고 이해를 하면 된다. 샘플 로스팅은 일본의 로스팅 단계 중 다섯 번째인 시티(City), 미국의 미디엄 로스팅(Medium Roasting)에 해당한다. 

샘플 로스팅에서 제시하는 핵심 사항은 로스팅 온도와 시간이다. 밀가루에 열을 가해서 빵을 만들어 먹는 것처럼 커피 또한 일정한 열을 가해서 화학적인 변화로 생기는 성분들을 물에 녹여 마시는 음료이다. 


커피 생두를 너무 낮은 온도로 로스팅을 하면 커피의 성분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다. 반대로 너무 높은 온도로 로스팅을 하면 원두가 타서 재가 되어 마실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런 점에서 로스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배출 온도라고 할 수 있다. 


커피 생두가 어느 정도의 온도로 로스팅되었는지 측정하기 위해 SCAA에서 제시한 방법은 원두의 색상을 비교하는 것이다. 로스팅 과정에서 투입되는 열이 부족하면 원두가 연한 갈색이 되고 너무 강하면 검은색에 가깝게 된다. 

샘플 로스팅에서는 스페셜티 커피 원두의 색도를 구별하는 기준인 아그트론 넘버(Agtron Number)가 홀빈(Whole Bean)의 경우 #58, 분쇄된 커피(Ground Coffee)의 경우 #63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로스팅을 통해 정확하게 그 값을 얻기는 어려우므로 Agtron #55~#65 범위로 로스팅을 하여 커피의 향미를 평가한다. 


로스팅 시간 또한 온도와 더불어 중요한 사항이다. 고기를 예로 들어보자. 겉모습은 비슷해 보이지만 하나는 강한 불로 1분 만에 구운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주 약한 불로 5분 동안 구운 것이다. 이 둘을 적절한 화력으로 2분 30초 동안 구운 것과 비교하면 맛이 어떻게 다를까? 아마도 빨리 구운 것은 겉은 타고 속은 덜 익을 것이다. 오랜 시간 구운 것은 육즙이 빠져나가 맛이 텁텁하고 식감이 좋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SCAA는 샘플 로스팅 시간을 8분에서 12분으로 지정해 놓고 있다. 

나는 좋은 신맛을 포인트로 하는 커피의 경우 9분대에 1차 크랙이 오게 해서 12분대에 배출을 한다. 샘플 로스팅에서 규정한 시간과 온도보다 약간 길게 볶고, 조금 높은 온도에 배출을 하는 이유는 아직 대다수의 소비자들이 커피의 신맛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강렬한 신맛보다는 잔잔하고 부드러운 신맛이 나는 커피가 좋다.


커피의 신맛에 대해 토론을 할 때에는 지금까지 제시한 기준과 방법에 대해 인지하는 것이 우선이다. 어떤 과정으로 로스팅했는지도 모르는 원두를 두고 논쟁을 하면서 친구와의 우정에 금이 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스페셜 티(Special Tea)로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란 미국 스페셜티 커피 협회에서 규정한 평가 척도에 따라 80점 이상을 받은 커피를 일컫는 말입니다. 


* 미국스페셜티커피협회(SCAA)유럽스페셜티커피협회(SCAE)는 2017년 1월에 스페셜티커피협회(SCA)로 통합되었습니다. http://www.sca.coff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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