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이야기가 되다.
“사장님! 선거 잘 했어요?”
19대 대통령 선거 다음 날.
원하는 후보가 당선되었는지 묻는 손님의 인사가 재미있다.
연배도 한참 위고 정치적 견해가 다른 분이라 대놓고 기쁜 척을 할 수가 없어서 살짝 웃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손님은 핸드드립 커피의 매력에 빠진 지 두 달쯤 된 터라 커피를 내어 놓을 때마다 늘 어느 나라 커피인지 물어오는데 오늘은 선거 얘기만 계속한다. 취임 첫날부터 자신이 지지하지 않은 대통령에 대한 견제와 감시의 기능이 작동한 걸로 보였다. 손님이 그렇게라도 선거에 대한 아쉬움을 푸는 모습이 좋았다. 커피는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음료이고 카페는 그런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건 무슨 커피지?”
잠시 후 들어온 네 명의 젊은 손님들이 흥분된 목소리로 선거 결과에 대한 기쁨을 표현하자 먼저 온 손님은 다소 주눅이 든 듯 선거 이야기를 멈추고 커피로 화제를 돌렸다.
“아리차요. 예가체프 아리차 내추럴. 달달한 베리향이 좋은 커피예요.”
손님은 바닥이 드러난 커피 잔을 코에 가까이 대고 아로마에 집중하더니 흐뭇한 표정으로 커피를 한 잔 더 달라고 한다. 패자에 대한 동정심 때문인지 나는 손님의 마음을 풀어줄 만한 커피를 찾아서 평소보다 더 오랜 시간 커피 봉투를 뒤적거렸다.
커피를 가까이하면 할수록 ‘다르다는 것’에 대해 존중한다는 말의 의미가 선명해진다. 다양한 이야기와 향미를 지닌 세상의 모든 커피들이 좋고 나쁘다는 기준으로 비교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은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갈등이 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같은 시대를 산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과 금을 긋고 어느 한쪽에 섰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다.
그런 모든 사실을 존중하면서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는 자세가 바로 사회를 조금 더 성숙한 방향으로 이끄는 동력이 아닐까. 상대방의 입장에 굳이 동조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커피를 모두 마신 후 잔 바닥에 코를 갖다 대면 정말 좋은 향기가 난다. 빈 잔에서 커피의 깊은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다른 이의 생각을 담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참 따뜻하다.
원하는 후보가 당선이 될 수도 있고, 낙선을 할 수도 있다. 선거 결과가 주는 기쁨이 크지만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 실은 더 설레는 일이다.
거의 매일 퇴근 시간마다 카페에 출근(?)하는 팬더삼촌이라는 손님이 있다. 팬더삼촌은 국민들이 정치에 너무 많은 관심을 가지는 나라는 불행한 나라라고 한다. 지난 탄핵국면에서 대통령 선거에 이르는 동안 국민들은 팟캐스트의 전문 패널처럼 뛰어난 정치 논객이 되어 버렸다. 대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일을 했다면 국민들이 혈압을 높여가며 정치를 말했을까.
하루에 수십 번도 더 정치 뉴스를 들여다보는 것이 당연시 되어 버린 시간들을 뒤로하고 이제 카페 앞을 지나가는 길고양이와 눈을 맞추고 몇 마디 나눠보는 소소한 일상을 다시 찾아야겠다. 카페에 오는 손님들도 정치인들의 이야기보다는 커피에 대해, 자신들의 삶에 대해 말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