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이야기가 되다.
손님이 선물로 받은 생두를 가지고 와서 로스팅을 해 달라고 할 때가 가끔 있다. 덕분에 보이차로 유명한 중국 윈난 성과 고지대인 네팔 등 평소에 경험해 보지 못한 커피를 맛보는 영광을 누린 적이 있다.
최근에 한 손님이 일본에서 구입했다면서 예멘 모카 이브라힘(Yemem Mocha Ibrahim)이라는 커피를 가져왔다. 예멘은 고흐가 즐겨 마셨다는 바니 마타르(Bani Mattar) 지역의 모카 마타리(Mocha Mattari)가 유명하다.
예멘의 모카 항구를 통해 수출되는 커피를 통칭하여 모카커피(Mocha Coffee)라고 불러왔는데 그 커피들이 초콜릿 향미가 뛰어나서 모카(Mocha)라는 단어는 ‘초콜릿 향미’라는 의미로 통용되기도 한다.
모카커피는 마타리(Mattari), 샤르키(Sharki), 사나니(Sanani), 부라이(Burrai), 하이미(Haimi) 등 생산 지역에 따라 이름이 부여된다. 가격 차이가 있기는 해도 등급에 따라 분류된다기보다는 다른 향미가 난다는 것으로 인식하면 좋을 것 같다.
손님이 가져온 예멘 모카 이브라힘은 처음 접해본 커피이다. 산지나 품종 등을 알아보기 위해 이곳저곳 수소문을 해 보았는데 국내에서는 유통이 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구글링을 해 보니 2000m 이상의 고지대에서 재배하고 주로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에만 판매된 적이 있는 정말 희귀한 커피였다.
이브라힘의 생두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마타리나 사나니보다 결점두가 많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마타리는 대부분 티피카나 버번종으로 소개되는데 이브라힘은 에티오피아 커피 원종처럼 크기가 작았고 균일하지도 않았다. 개량 품종이 아닌 자연 상태의 커피를 그대로 수확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로스팅을 하기도 전에 벌써 흥분됐다.
예멘은 가공 방식이 낙후되어 건조 과정에서 커피가 가진 고유의 향미를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예전에 언급한 인도네시아 만델링 커피와 유사한 사례인데 실제로 예멘의 시골집 지붕에서 커피를 건조하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1차 크랙이 끝나는 지점(214℃)에 맞춰 샘플 로스팅을 했다. 예상대로 깨진 원두와 미성숙두(Quaker)가 많이 보인다.
다음 날 커핑을 해 보았는데 맛을 보고 나서 무척 기뻤다. 풍부한 과일의 신맛과 단맛, 꽃향기가 풍부해서가 아니다. 시골스러움(Rural), 건초 냄새(Hay), 곰팡이 냄새(Moldy), 흙냄새(Earthy)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요즘 커피에서 찾아보기 힘든 향미들이다. 초콜릿 같은 좋은 쓴맛과 달고 긴 후미는 덤으로 얻었다.
커피는 높은 커핑 점수를 받아야 좋은 가격에 판매된다. 하지만 커피를 즐기는 소비자들은 굳이 상업적으로 정해진 기준에 자신을 맞출 이유가 없다. 말똥 냄새가 나는 치즈와 거름냄새가 나는 홍어를 즐기듯 향기와 맛의 스펙트럼을 무한대로 넓혀가면 커피는 여러분들에게 더 큰 만족을 줄 것이라 확신한다.
남은 예멘 모카 이브라힘을 2차 크랙 초반과 2차 크랙 후반 강 볶음으로 두 번 더 로스팅을 해 볼 생각이다. 벌써 군침이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