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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난다 Nov 28. 2024

프롤로그

폴리시에 통밀가루를 푼 후 몇 번 휘휘 저어 냉장고에 넣어둔 반죽이 밤새 많이 부풀어 있었다.

곡물을 익혀서 먹는다는 것, 더 단순하게 말하면 탄수화물을 먹는다는 것일 뿐 빵의 풍미에 대해 그렇게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삶의 절반이 먹는 것이라는 말에 공감은 가지만 식사를 그저 배고픔을 채워주는 것 이상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뭐든 먹을 게 있으면 그걸로 해결했고, 과분한 음식은 애써 외면하고 사양하는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예열기능도 없는 가정용 오븐의 아날로그 다이얼을 200도 정도에 맞춘 후, 대충 둥글게 만든 형상의 반죽을 넣는다. 제빵 교재마다, 유튜버마다 만드는 방식이 참 까다롭고 다양하지만 나는 오로지 탄수화물을 먹을 있는 수준으로 익히면 된다는 생각뿐이다. 

인테리어 업자의 집은 비가 새서 벽지에 곰팡이가 피고, 고급 레스토랑의 쉐프는 라면으로 적당히 저녁을 떼운다는 말처럼 나도 손님을 위해 커피를 내릴 때와 나 혼자 마실 때의 모습이 확연히 다른 사람이다. 더군다나 통밀빵은 오로지 내 식량이라서 만드는 과정이 더 무심하다. 없지만 그것도 제빵경력이라면 15년이다.

예가체프 첼베사 내추럴 20g을 갈았다. 몸이 알아서 내리는 커피라 정은 없지만 콧속으로 밀려드는 열대과일의 향기는 눈을 지그시 감지 않을 없게 한다. 

뻣뻣하고 거친 통밀빵 조각과 뜨거운 커피 한잔으로 아침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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