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난다 Nov 29. 2024

1. 초심자

살면서 언젠가는 발효에 관한 일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북적거리며 살아온 시간들과 결별하고 싶기도 했지만 효모의 변화에 귀 기울이는 것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발효에 관한 일을 한다면 아마도 술이나 식초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특히, 식초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발효 식품의 마지막 단계로 보였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관심이 갔다. 하지만, 나는 몇 달 전부터 빵을 굽고 있다.


로스터리 카페를 하면서 전날 밤 물에 풀어 놓은 통밀가루를 다음 날 아침에 구워 먹었었는데, 사람들은 그걸 두고 글루텐 형성을 최소화한 무반죽 통밀빵이라고 했다. 영양소가 풍부한 건강한 빵이라는 의미였다. 마땅한 제빵기구도 없었고, 과정이 복잡하지 않아서 만들어 먹었던 것인데 제법 탁월한 선택이나 보다.

한 줌의 밀가루가 빵이되는 과정은 커피를 로스팅하는 것만큼 기분좋은 경험이다. 오감을 즐겁게 하는 마야르반응과 카라멜라이징을 잘 견디면 밀가루는 몇 배로 부풀어 기분 좋은 선물이 된다. 비록 효모나 클루텐의 작용은 아니지만 나는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비슷한 경험을 많이 했다. 설에 남은 바짝 마른 가래떡 조각을 뻥튀기할 때도, 양푼이에 담긴 밥과 김치를 삶아 국밥을 끓여낼 때에도, 밀가루를 치댄 조금씩 떼낸 조각을 펄펄 끓는 멸치 다시에 던져 넣을 때에도 재료보다 몇 배로 커지는 음식의 마법을 보면서 자랐다.


커피와 빵, 이들이 전해주는 이야기에 미소짓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나는 제빵 학원 문앞에도 가보지 않았지만 매일 아침 빵과 커피를 만들며 느꼈던 감정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아도 평생 그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참 행복할 것 같았다. 결심을 한 이후로 도서관에서 빵과 발효에 관한 책을 찾아 열심히 읽었고 다양한 종류의 빵을 만들었다. 얼마 되지 않는 양이라 반죽기 없이 손으로 직접 반죽을 했고, 10만원대의 가정용 미니 오븐을 사용했다.


깜빠뉴, 바게트, 버거번, 식빵, 브리오슈, 단팥빵...

우여곡절 끝에 새롭게 도전한 반죽이 예상했던 형상의 빵이 될 때마다 특별한 나만의 레시피로 작은 빵가게의 아침을 여는 행복한 상상을 했다. 제대로 된 설비도 없이 독학으로 먹음직스러운 빵을 만들어내는 내 자신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초심자의 행운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내가 만든 빵과 시중에서 판매하는 빵을 비교해 보기 위해 베이커리를 돌아다니는 동안 세상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빵을 굽고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현실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내 빵은 가게마다 진열된 수십 종류의 빵 사이에 도저히 놓을 수 없을만큼 초라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베이커리를 뒤돌아 나오는 동안 머릿속을 멤도는 생각은 나를 더욱 불편하게 했다. 모든 베이커들이 처음에는 나처럼 낭만적인 삶을 꿈꾸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생존을 위한 경쟁에 내몰리고 말 것이라는 것.

커피와 함께 한 지난 시간, 나는 이미 그런 경험을 했고, 그렇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도 바보같이 다시 그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빵을 만들었길래 겁도 없이 또 운명의 동전을 던지려 하는지.


세상에는 새로운 먹거리가 끝없이 넘쳐나고,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 탄수화물을 적게 먹어야 한다며 아우성이다.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인가? 내가 찾은 곳은 절대 신대륙이 아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쳐가는 그저그런 식상한 풍경일 뿐. 초심자의 행운이 많은 이들을 과대망상으로 이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망상의 바다 한 가운데에서 허우적거리는 실수를 또 저지르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