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단상
일본 교토의 작은 출판사 ‘미시마샤’는 원래부터 교토에서 시작한 출판사는 아니었다. 도쿄에서 출판 편집자로 일하던 미시마 쿠니히로 씨는 2006년 독립하여 작은 출판사를 차리지만 당시 작은 출판사들이 시도하지 못했던 일에 과감히 도전한다. 그 일이란 바로 교토로 출판사를 이전하는 것이었다. 출판 사업의 특성 상 도쿄를 터전으로 사업을 펼치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지만 미시마 씨는 결단을 내렸다. 그 후 미시마샤는 어떻게 됐을까? 기우와 달리 미시마샤는 교토에서 지역 출판사의 입지를 잘 다져나가고 있다. 재밌는 건 교토에 사무실을 내면서 1층은 동네서점으로 바꿔 지역 커뮤니티의 문화 플랫폼 역할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미시마샤는 많은 출판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아! 도시를 벗어나도 책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구나!, 라고.
미시마샤의 미시마 씨는 요즘 로컬계의 언어로 바꿔 말하자면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미시마 씨가 딱히 로컬의 부흥과 지역 혁신을 부르짖으며 내려간 건 아니지만 교토 어느 막다른 골목에 작은 서점과 출판사가 생긴 것만으로도 주변 공기는 충분히 바꿨다. 중요한 점은 미시마 씨를 비롯한 출판사 직원들의 삶이 더욱 나아졌다는 것이고 지역은 활기를 찾았다는 점이 아닐까.
이제 눈을 우리에게 돌려보자. 교토의 미시마샤처럼 한국에도 로컬 출판사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통영에 자리 잡은 ‘봄날의 책방’은 ‘남해의 봄날’이라는 출판사가 운영하는 동네서점이다. ‘남해의 봄날’과 ‘봄날의 책방’은 통영의 로컬 문화에 집중했다. 통영의 자연 환경, 먹거리, 통영의 골목을 비롯해 통영의 예술인과 문화 자원을 발굴해 출판으로 이끌고 있다. 로컬 콘텐츠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이제 봄날의 책방은 통영 관광객의 방문 필수 코스가 된 지 오래다. 아울러 출판사 ‘남해의 봄날’은 통영에서의 발굴 자원을 콘텐츠로 기획하고 생산할 뿐 아니라 지역의 동네서점과 연결하여 재밌는 일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또 하나 빼먹을 수 없는 로컬 콘텐츠 회사가 있다. 콘텐츠 그룹 ‘재주상회’다. 제주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큐레이션하는데 대표적 결과물이 로컬 매거진 <인iiin>이다. 한 해에 철마다 네 번 발행하는 계간지 <인iiin>은 여느 로컬 매거진과 달리 펴낼 때마다 만부 이상은 팔린다고 한다. 제주 이주 열풍이 한창일 때 제주에는 도시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오픈한 동네서점만 100여 곳에 달했다고 한다. 재주상회는 이러한 제주의 동네서점을 네트워크하여 제주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재주상회는 매거진으로 시작해 단행본은 물론 로컬 푸드 발굴, 굿즈 제작은 물론 공간 개발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러한 재주상회의 활약으로 재주상회는 2020년 중소벤처부가 뽑은 로컬 크리에에터 지역가치 분야 최우수 팀으로 선정된 바 있다.
지역 가치를 되살리는 로컬 크리에이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특히 로컬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이들은 도시에서의 경쟁에서 밀린 자들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새로운 대안을 찾아 나선 것이다. 이들의 자유롭고 창의적 사고는 로컬 라이프 스타일과 잘 어우러지기도 한다. 하지만 로컬에 도전하는 청년들이 모두 만족스러운 삶을 살지는 않는다. 이들이 지속가능하게 로컬에 스며들기 위해서는 정책 지원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청년 스스로 삶의 태도를 전환하는 삶의 혁신이 있어야 한다. 미시마샤를 비롯해 남해의 봄날과 재주상회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처음부터 사명을 갖고 로컬로 뛰어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바꿔보려고 시작했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