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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보로 Oct 24. 2021

맥주, 삶의 평화

로컬단상

최근 몇 년 사이에 수제맥주 시장이 급성장했다. 수 십 년째 꿈쩍하지 않았던 기존 맥주 양대 산맥 구조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실제로 한국 맥주는 소맥용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국산 맥주는 밋밋했고 그만큼 존재감이 약했다. 식당에서도 “여기 맥주 한 병이요!” 그러면 주인은 아무거나 알아서 갖다 줬고, 손님도 주는 대로 마셨다.(어차피 소주랑 섞을 거니까) 반면 소주는 따져마셨다. ‘참이슬’파와 ‘처음처럼’파가 거의 뚜렷하게 나눠졌다. 그만큼 소주가 대중적이었다. 그렇다보니 맥주 애호가들은 수입맥주를 선호했다. 특히 편의점 중심으로 수입맥주 패키지 상품이 비교적 저렴하게 공급되자 맥주 시장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수제맥주 펍이 홍대앞과 이태원을 중심으로 퍼져나가자 천편일률적 음주문화(회식문화)에서 벗어나 자신이 마시고 싶은 술을 즐기는 MZ세대는 열광했다. 드디어 한국도 맥주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사실 맥주혁명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맥주보다 앞서 커피 시장이 인스턴트에서 아라비카 원두 시장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안정된 사회일수록 고품질의 커피와 맥주가 보편화한다. 거꾸로 커피와 맥주가 맛있는 사회가 보다 안정된 사회가 되는 건지는 사회학적으로 따져봐야겠지만 커피와 맥주가 맛없는 사회일수록 건강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천연균에서 찾은 오래된 미래』의 저자이자 빵집 ‘타루마리’를 운영하는 와타나베 이타루 씨는 빵을 만들기 위해 천연효모를 직접 채취해 왔는데 최근에는 이 천연효모를 이용해 맥주를 직접 만들고 있다. 이른바 ‘타루마리 IPA’이다. 일본 시골의 천연자원을 활용해 창의적 로컬 문화를 개척한 것이다. 이러한 로컬푸드 특히 크래프트 맥주가 유명한 곳으로 미국 포틀랜드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힙스터의 성지라 불리는 포틀랜드는 한국이나 일본의 로컬크리에이터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곳인데 포틀랜드는 지역 자원을 활용해 성공한 로컬브랜드가 많고 무엇보다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 소비를 통해 지역 내 경제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다. 지역 독립 책방, 카페, 술집, 음식점, 옷가게 등이 저마다 개성을 드러내며 주민과 상생하고 있다.


작년에 술 제조 관련한 규제가 완화되면서 국내 소규모 수제맥주 브루어리 등의 활동에 청신호가 켜졌다. 제조 면허가 있으면 캔맥주나 병맥주를 OEM방식의 위탁 생산도 가능하고 전국 유통도 가능해졌다. 이러한 제도적 변화는 지역에서 수제맥주를 생산하는 브루어리에게는 기회가 됐다. 무엇보다 로컬크리에이터 중심으로 성장한 브루어리는 단순히 맥주만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타루마리 빵집이나 포틀랜드 경우처럼 지역과 상생하면서 로컬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어 성장이 기대된다. 다만 코로나19 상황으로 성장의 정체기를 겪는 곳도 있지만 언젠가는 해소되리라 생각한다.


국내 로컬크리에이터 브루어리는 대표적으로 광주 ‘무등산 브루어리’와 강릉 ‘버드나무’를 비롯해 제주맥주, 크래프트루트, 인천맥주 등이 있는데 최근에는 국산 맥아를 사용하는 브루어리가 늘어나고 있어 지역 자원 활용도가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정작 지역 농산물을 활용하지 못해 아쉬움이 많았던 터라 국산 맥아 활용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맥주뿐 아니라 전통주도 새롭게 거듭나고 있다. 서천군 한산의 ‘삶기술학교’를 운영하는 로컬벤처 자이엔트는 유래 깊은 한산 소곡주를 젊은층 감각에 맞게끔 재해석하고 리브랜딩해 시장에 선보이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소곡주와 로컬스테이를 결합한 공간 콘텐츠 사업을 시작했다. 바야흐로 술이 라이프 콘텐츠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술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궁극의 음식이라는 위상을 빼앗긴 적이 없다. 가장 정성을 다하는 음식의 끝판왕, 술. 그렇기 때문에 제의적 효용이 높았고 또 축제의 중심 음식이기도 했다. 오늘날 로컬에서 펼쳐지는 술 콘텐츠의 약진은 바로 술의 제자리 찾기이자 술이란 지역 콘텐츠를 재발견하여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즐겁게 만들기 위함일 것이다. 아니 거창하게 말할 것도 없다. 하루 일과를 마친 후 동네 가까운 펍에 들러 맛있는 맥주 한 잔 또는 깔끔한 전통주 칵테일을 마실 수 있는 삶, 그런 삶의 평화가 이루어질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모히또에서 로컬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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