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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보로 Oct 24. 2021

연결성의 회복, 커뮤니티 디자인

로컬단상

서울 어느 신축 아파트 단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택배 노동자와 입주자 간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입주자 측은 공원화한 아파트 지상은 안전 문제로 차량이 못 다니니 지하주차장을 거치는 차량 동선을 이용하라고 요구하지만 막상 아파트 지하주차장 출입구는 층고가 2.3m에 불과해 정작 차고가 높은 택배 차량은 출입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입주자 측은 그건 당신들 사정이니 알아서 집 앞까지 배송하라는 입장을 보이는 듯하다.


문제는 단지의 규모다. 무려 5000세대가 입주한 대규모 단지라 택배 기사가 아파트 입구에 차를 세운 후 일일이 택배 박스를 집앞까지 배달하기란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대규모 아파트가 비단 이곳뿐이 아닐 텐데 왜 유독 이곳에서 소음이 들려오는 걸까? 현명한 해결 방안은 정말 없는 것일까?


아파트 설계 시점부터 지하주차장 높이를 높여놨으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테다. 실제로 2019년 1월부터 아파트 지하주차장 층고는 법령이 개정되어 과거 2.3m에서 2.7m로 개정됐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국민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상황이었고 온라인 마켓이 커지면서 택배 차량의 빈번한 진출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시행사와 건설사는 입주자의 라이프스타일이나 택배 서비스의 특성을 설계에 반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짓기도 전에 분양만 하면 대박인데 굳이 돈을 더 들이면서까지 법적 기준 이상의 편의를 제공할 이유가 전혀 없었을 테니까.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보라. 불과 40㎝ 모자라는 지하주차장 높이가 만들어낸 물리적 간극이 우리사회에 어떠한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말이다. ‘단지’라는 욕망에 둘러싸인 이익공동체가 외부인(특히 약자계급)을 향해 표출하는 왜곡된 에너지가 무섭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왜 아파트 단지에만 들어가면 상생의 커뮤니티성을 상실하는 것일까.


일본에 ‘커뮤니티 디자인’이란 개념이 있다. 사람과 마을을 서로 연결하는 방법을 찾고 마을의 문제를 함께 풀어 나가기 위한 솔루션을 만드는 일이 커뮤니티 디자인이다. 한국에서 ‘소셜 디자인’이란 말이 있긴 하지만 커뮤니티 디자인보다 약간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대표적 커뮤니티 디자이너로는 야마자키 료라는 사람이 있다. 과장하면 일본 사회에서 야마자키 료가 없었다면 현재 일본에서 벌어지는 지방창생이나 마을만들기는 나아갈 방향이나 기틀을 마련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커뮤니티 디자인으로 마을 공동체를 회복하고 마을이 환대의 장소로 거듭나는 사례를 모은 책이 있다. 야마자키 료가 쓴 『커뮤니티 디자인』이란 책인데 국내 번역서가 나온 지는 꽤 오래전이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 여전히 유효한 가치를 담고 있다.


야마자키 료가 벌이는 커뮤니티 디자인의 특징은 사람을 중심에 두는 디자인에 있다. 다시 말해 예산을 들여 물리적 공간을 만드는 것보다는 왜 그곳에 공간이 필요한지를 꼼꼼히 살피고 만약 필요하다면 주민이 직접 프로그램을 짤 수 있도록 설계한다. 주민 스스로 마을의 가치를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중요한 점은 예산 낭비를 막는 장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용자 스스로 마을의 문제를 발견하고 함께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신뢰 자산을 쌓게 만드는 데 있다. 이것이 바로 커뮤니티 디자인의 가치가 아닐까 싶다.


신뢰 자산이 형성된 마을 커뮤니티가 존재한다면 앞서 언급한 아파트 택배 갈등을 어떻게 풀었을까? 택배 노동자는 아파트 단지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아파트 단지 주변의 수많은 골목골목도 다 택배 서비스 지역이다. 다시 말해 물류 서비스는 아파트 단지의 독점 인프라가 아닌 것이다. 해결할 의지만 있다면 지하주차장 층고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서로 만나야 한다. 사실 그 두 집단은 서로 적대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상생 관계 아닌가. 만나다보면 분명 현명한 그들만의 해결 방안이 나올 것이 틀림없다. 다른 아파트 단지도 다 그렇게 해결했는데 이곳이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이것이 커뮤니티 디자인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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