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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보로 Sep 30. 2021

'깐부'가 되자!

뭐든지 보고,書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화제다. 그간 한국 영상 콘텐츠가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모은 경우가 적잖이 있었지만 이번 ‘오징어게임’은 파급력이 기존과 다르다. 시리즈로는 전세계 1위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을 뿐 아니라 해외 언론의 호평과 관련 동영상이 유튜브에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까? 이미 많은 전문가가 진단했듯이 끝없이 경쟁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신자유주의 질서 하에서 살고 있는 전 지구인이 동감했다는 데에 답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오징어게임’은 처절하게 현실 세계를 반영하고 있는 우화이다. 바로 그 점에서 기존의 ‘데스 게임’ 류의 콘텐츠와 차별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시청자들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서 이어지는 계급론을 ‘오징어게임’이 이어받아 지하 인간들이 최상층에 균열을 일으키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오징어게임이 열리는 생존 게임’ 현장을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세계가 거대한 오징어게임의 현장이나 다름없다면 나는 게임에서 빠지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생존게임에 매달리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선택한 스테이지는 바로 ‘로컬’이다. 일본의 철학자 우치다 타치루는 <로컬리즘 선언>이란 책에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발생 후 도쿄를 벗어나 지방으로 향한 청년들의 움직임을 그와 같은 맥락으로 분석한다. 민낯을 드러낸 기존의 자본주의 질서 안에서는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경쟁에서 우위를 독점할 수도 없고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U턴, I턴, J턴이란 다양한 방식으로 로컬을 선택했는데 그들이 주목한 것은 바로 커뮤니티의 가능성이다. 그들이 말하는 커뮤니티란 돈에 구애되지 않아도 상생할 수 있는 삶의 틀이다. 예컨대 서로에게 필요한 물품은 교환해서 쓰거나 함께 만든다. 이뿐만이 아니라 아이를 돌봐주는 대신에 음식을 나누거나 음식을 나누는 대신에 차를 빌려 쓰기도 한다. 거주 공간은 말할 것도 없다. 인구 감소로 곳곳에 빈집이 수두룩한 지역은 이들을 위해 유휴공간을 내준다. 또한 그들은 지역의 사회 문화적 자원을 발굴하여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어 공동의 이익을 실현하는 사업도 한다.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해왔던 삶에서 벗어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일본처럼 지방소멸과 인구감소 문제에 직면한 한국.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삶의 질이 떨어지는 환경에서는 일확천금을 얻지 않고서는 모든 것이 불투명해진 삶. 오징어게임에 참가하느냐 아니면 새로운 삶을 모색하느냐의 기로에 선 수많은 청년층. 따라서 로컬의 발견은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으니까.


누군가는 부동산 갭투자로 큰돈을 벌고, 누군가는 주식으로 대박을 치고 또 누군가는 가상화폐 투자로 돈을 번다. 상대적 박탈감으로 자존감은 괴멸한다. 열심히 살았건만! 하지만 누군가는 로컬이라는 새로운 무대에 눈을 돌린다.


로컬은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장소가 아니다. 오랜 전부터 항상 있었다. 어릴 적 동네 아이들과 함께 놀았던 골목이나 학교 운동장 같은 곳. 그렇다고 로컬을 낭만이 가득한 곳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반드시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다만,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가 관건이다. 돈으로 해결하거나 권력으로 해결하는 게 아니라 함께 머리를 맞대 궁리해야 하는 곳이 바로 로컬이다. 따라서 로컬은 삶의 대안이라기보다는 삶의 태도에 가깝다.

‘오징어게임’에서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장면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죽고 456명이 지내던 공간이 텅 비었을 때 드러난 벽면을 보라. 가만히 보면 지금까지 그들이 참가했던 게임의 내용이 그림으로 다 설명되어 있다. 더구나 게임 관리자는 단 한명만이 456억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누구든 최종 단계만 통과하면 함께 나눠가질 수 있는 돈이었다. 만약 누군가가 서로를 경쟁상대로 보지 않고 협력 대상으로 발상의 전환을 이뤘다면? 다음 게임을 미리 알 수 있었을 테니 어둠 속에서 서로를 죽이는 잔인한 부가 게임은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람을 경마장의 말처럼 여기는 게임 설계자와 투자자 집단에게 멋지게 한방 먹일 수 있지 않았을까? ‘오징어게임’의 메시지는 그래서 우리를 더욱 뼈아프게 만든다. 우리 현실의 인간이 서로 협력하지 않고 사는 것을 그대로 반영했으니까.


로컬의 도전이 값진 이유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로컬을 자본주의 무대로 끌어올리는 데 있지 않고 협력하는 삶을 증명하는 데 있지 않을까 싶다. 로컬은 모두가 서로에게 깐부가 될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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